지금은 결단의 시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국의 소용돌이속에서 있었던「평화대행진」도 끝났다. 이에 앞서 청와대의 영수회담을 통해서 여야간의 정치적 타협의 가능성이 비쳐지게 되었다. 온 국민이 지금 간절히 바라는것은 여야가 서로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존중히 여기고, 이에 순종하는 자세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무슨 잔꾀를 부리고서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되어진 사건들을 곰곰 훑어보면 현정권은 애당초부터 국민의 신뢰를 받을만한 기틀을 차리지 못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소위 정통성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파생된 것이다.
언제나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여 왔지만, 그러한 정체성과는 전혀 반대되는 일을 해왔다.자유민주주의라면 제일 기본요건이 언론자유인데, 언기법과 보도지침같은 것을 가지고 통제 언론을 펴왔고, 기독교방송의 뉴스와 광고를 못하게 하면서 공영방송은 편파보도를 하게하는, 자유민주주의에 알맞지 않는 일을 해왔다. 그리고 공권력으로써 비판세력을 규제했고, 비판세력을 급진 좌경이라는 테두리속에 몰아넣고 말았다.
이처럼 겉으로 내놓은 명분과 실제로 하는 일사이에 있는 자가당착때문에 국민의 불신을 받게된 것이다. 강자의 논리는 언제나 일방적이요,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 무엇이든지 밀어 붙이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약자를 힘으로써 묶어놓고 불공정한 규칙으로 경기에서 이기려고 했던 것이다.
올림픽 행사는 거국적인 행사임에 틀림이 없다. 이번에 올림픽을 거국적으로 치르면서, 하나의 민족적인 축제로 승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돈도 벌고, 국제적으로 우리민족의 잠재력을 돋보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우리 국민이「올림픽 정신」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장사하는 것도 좋고, 행사를 되도록 찬란하게 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런것들은 어디까지나 겉치레나 이해관계문제다.
올림픽의 근본정신은 고대희랍의 민주정신을 운동경기를 통해 표현하는 행사다. 그것은 공정한 규칙에 의해 공정하게 경기를 치르고, 승자나 패자는 심판의 결정에 승복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올림픽 정신에 바탕을 둔 정치문화는 공정한 법에 따라 민주적으로 승패를 가리는 경기 정신이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자는 국민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내년에 올림픽을 치르려면 여러가지 준비도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정치적 분위기도 올림픽 정신을 받아들일 만한 자세를 갖추어야만 하겠다. 그래야만 그 행사가 민족적인 축제가 될수 있다고 믿는다.
공정한 룰에 따르는 공정한 정치를 하려면 먼저 정부·여당이지금까지 국민의 불신을 받게된 요소들을 빨리 제거하는 작업이다. 그 1차적인 조치가 언론의 규제를 푸는 일이다.
지금까지 법으로, 행정으로 묶어놓은 규제를 없애서 언론을 통해 국민의 생각을 받아 들여야 한다.
둘째로는 하루속히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릍 알기 위한 조처를 취해야만 할것이다. 국민투표 절차를 밟아 빠른 시일내에 모든 지엽적인 문제는 제쳐 놓고라도 민의의 소재를 신속히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은 차기 대통령이 누가되느냐 하는 것이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엄청난 경제발전이 안고있는 잠재적인 문제들과 올림픽 행사에 따르는 긴급한 문제들을 어떻게 무난히 해결해 나가야하는가 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국가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다. 이제는 대통령이 내려야 할 결단은 대통령이 내려야 하고, 국민이 내려야 할 결단은 국민각자가 내려야 할 시점에 와있다.
우리의 결단을 남에게 미룰수는 없다. 미국행정부가 아무리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입장에서 하는 충고에 불과하다. 우리의 결단을 남이 해주길 기대할 수는 없다.
적이 쏘는 총탄앞에서 전진하는 군인은 용감한 군인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용기 있는 사람은 잘못을 뉘우치고 후퇴해야 할때 후퇴하기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 이것은 체면 손상이나 비겁한 행위가 아니라 살신성인을 하는 용기있는 행위다. 오늘날 국민이 간절히 기대하는 것은 이렇게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들이다. 잘못을 뉘우치는 용기를 가지는 지도자들을 볼 때, 국민 각자는 그런 지도자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용기있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공정한 심판에 순종한다는 용기있는 자세가 우리지도자들에게서 보여질 때, 또 그러한 지도자들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심판하는 국민의 뜻이 자유로이 표현될 때, 그 때야말로 올림픽은 우리모두의 축제가 될 것이다.
우리 나라가 모래위에 세운 허약한 집과 같이 되지 않고, 반석위에 세운 튼튼한 집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통치자나 국민이나 정치인이나 정치도의를 확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해서 민주화를 성취해야만 할것이 다.
그 첫발을 내디디는 일을 속히 단행해야만 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책임있는 사람들이 먼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