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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 따위는 알파고에 맡겨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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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호 28면

약 100만 자.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외워야 할 경전의 글자 수다. 과거시험뿐 아니라 수능도 암기다. 수학·영어조차 암기이고 사시·행시·의사고시까지 모두 그렇다. 그렇게 암기력을 두뇌 능력으로 여겨 일생을 외우는 데 보낸다. 하지만 컴퓨터 저장 능력이 성능은 아니다.


모든 기보를 다 기억하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억은 컴퓨터에게 맡기라 한다. 가장 암기 잘하는 사람이던 법관도, 의사도 기억력 좋은 인공지능 차지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알파고는 우리에게 기억을 내려놓으라 한다. 기억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세세한 기억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억으로부터 자유를 찾으라는 뜻이다.


유학(儒學)의 중심에는 예(禮)가 있다. ‘예’란 제사의식에서 생겨나 계급적 위계질서, 사건이나 사물의 순서까지 모든 문물과 질서를 아우르는 말이다. 공자가 말하는 도(道)가 바로 예다. 그런데 예도 결국 기억이다. 제사란 조상에 대한 기억이고, 문명의 자취를 담은 웬만한 행사도 기억이자 기록이다. 유학이 중시하는 시서예(詩書禮) 역시 그렇다. 그렇다 보니 100만 자를 기억할 수 있는 기억력 좋은 사람을 우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자면 유학이란 본격적인 하드디스크 용량 키우기 경쟁 시대의 학문이다.


장자(莊子)에는 “앉아서 잊는다”는 ‘좌망(坐忘)’이란 말이 나온다. 재미있게도 이 대목에서 장자는 공자의 제자 중 공부 제일 잘했던 안회(顔回)를 출현시킨다. 비록 일찍 죽었지만 그는 출중한 저장 용량의 머리를 가졌었다. 공자와의 문답에서 “인의(仁義)를 잊었습니다” “예악(禮樂)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저는 앉아서 잊었습니다”라고 차례대로 고백한다.


그러면서 좌망이란 “지체(肢體)를 버리고 총명을 내쫓으며, 형체를 떠나고 지혜를 버려 대도에 동화한다”고 설명한다. 안회의 비유로 장자는 좁아터진 봉건 문명의 핵심이 바로 기억임을 파악하고 그런 기억을 내려놓아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알파고는 인간의 진면목이 기억장치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기억장치 기능만 강조한다면 절대 알파고를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인간의 기억은 정확하지도 않다. 기억의 입력은 선택적이고, 출력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전과 달리 문명의 지식이 너무나 방대해져 이제는 100만 자로는 어림도 없다. 더 이상의 암기는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선진국은 무조건적 암기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건만 아직 우리는 모든 시험을 암기에만 의존한다. 우리 교육의 후진성이 바로 봉건 유교가 했던 대로 ‘암기로 줄 세우기’다. 알파고의 말대로 인간은 저장장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하드디스크가 아니다. 암기 안 한다고 이 문명이 다시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암기 따위는 알파고에게 맡기고 우리는 자유롭고 너른 창공을 향해 마음을 돌려야 한다.


현대는 창의와 즐거움의 세상이다. 하지만 동양학 하면 공자의 근엄함이나 노장의 현묘함만을 떠올린다.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 동양학이 말하는 즐거움과 재미의 참뜻을 현대적 의미에서 찾아보는 ‘동양학 가라사대’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호영


서강대 종교학과 학사·석사. 런던대학교(S.O.A.S.)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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