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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신선, 운영은 미흡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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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호 29면

이번 시즌 헤라서울패션위크의 가장 큰 변화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등용문인 ‘제너레이션 넥스트’의 변신이다. 무대부터 바뀌었다. 지난해에는 DDP 건물 밖 중앙광장에 비닐하우스로 텐트를 친 임시 무대였지만 올해는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대선제분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쇼 무대 자체보다는 바이어를 대상으로 하는 트레이드 쇼룸 형식으로 꾸몄다. 80여 개의 브랜드 부스를 마련해 해외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상품을 선보이고 현장에서 바로 거래가 이뤄지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미래적 패션과는 무관하게 허름한 공장에 장소를 마련한 것에 대해 패션위크를 주관한 서울디자인재단 측은 “서울 외곽의 버려진 공간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창조, 활용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밀라노·파리·런던·뉴욕 컬렉션에서도 버려지고 낡은 공간을 재활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지난해 가을 런던패션위크는 소호 지역의 주차장 건물을 활용해 메인 쇼와 쇼룸을 함께 진행했다. 세계 3대 패션 페어 중 하나인 브레드 앤 버터 역시 베를린의 폐공항인 템펠호프에서 매 시즌 행사를 진행한다.


대선제분공장의 허름하고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괜찮은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백화점 체인업체 하비 니콜스 홍콩의 MD 매니저 토니 리는 “뉴욕에서도 오래된 공장 건물을 이용해 쇼룸을 진행하는 건 흔한 일”이라며 “마음에 드는 옷을 찾을 수만 있다면 장소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파리 쇼룸에도 여러 번 참여했던 ‘무홍’의 디자이너 박무홍씨 역시 “파리에서 봤던 유명 백화점·편집 숍의 바이어들을 이번에도 만날 수 있었다”며 해외 바이어들의 방문 숫자에 만족스러워했다.


이번 제너레이션 넥스트 쇼룸의 수주량은 아직 집계되지 않은 상태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해외 유명 바이어들을 대거 초청해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패션위크를 만들겠다’고 한 헤라서울패션위크 정구호 총감독의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루어 진 것같다.


하지만 운영의 미흡함도 여럿 지적됐다. 일단 동대문 DDP와 문래동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자동차로 움직여도 기본 30분. 80여 개의 부스를 제대로 보려면 서너 시간도 모자란다. 그러는 동안에도 DDP에선 주요 쇼들이 1~2시간 간격으로 벌어진다. 셔틀버스를 30분~1시간 간격으로 운행했다고는 하지만 교통체증이 일상화된 서울에서 하루에 두 장소를 오가기는 확실히 버겁다.


아예 하루를 제너레이션 넥스트 쇼룸에만 할애했다면? 이번엔 시간이 너무 남는다. 대선제분공장은 하나의 섬이었다. 공장 바로 건너편 골목엔 사창가가 밀집해 있고, 주변에 식당이라곤 70년대 영화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백반집 한 개가 고작. 10분쯤 걸어가면 타임스퀘어가 있지만 누가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찾아갈 생각을 못한다. 공장 안에는 간단한 스낵을 파는 매점이 전부. 옷을 보는 것 외에는 볼 것도 할 것도 전혀 없는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고립된 공간이었다.


‘새로운 문화 공간 창출’을 위해 의외의 장소로 신선한 충격을 주기는 했지만 정작 한국의 디자인이 발생한 서울의 거리문화는 하나도 접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저 혼잡한 거리에서 시간을 낭비하며 보낼 뿐. 바이어는 물건만 사고, 기자는 취재만 하면 되나. 세계 4대 컬렉션을 찾는 바이어와 기자들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빈 시간을 활용해 식당·카페·상점·미술관 등을 들르며 그 도시만의 문화와 매력을 흡수한다. 과연 서울패션위크에선 무엇이 기억에 남았을까.


글 서정민 기자,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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