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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 주기식 기업문화 더이상 안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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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2 면

직원들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와 모욕 주기를 둘러싼 구설이 잇따르고 있다. 경남 창원에 있는 방산업체 D사는 지난해 말 직원 이모(47)씨가 명예퇴직을 거절하자 대기발령을 내고 사물함을 바라보는 자리에 책상을 배치하고 업무를 주지 않는 ‘면벽(面壁) 대기’를 시켰다.


이씨는 두 달간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오전·오후 15분씩의 휴식과 한 시간의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는 휴대전화나 컴퓨터 사용도 못했다. 견디다 못한 이씨가 2월 25일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대기발령 구제신청을 냈지만 노동위원회는 “재배치를 위한 임시 자리 배치였다”는 회사 측 해명을 받아들여 이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이씨는 1대1 재교육을 받고 이달 초 경력과 전혀 관계없는 자재 관리 부서로 배치받았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구의 한 소주 제조업체는 결혼 소식을 알린 여성 직원에게 퇴직을 종용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담당 간부는 “결혼해서 애만 하나 낳는 순간 유축기 들고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짜고 앉았고…”라며 성차별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114 안내원 출신 여성 직원에게 인터넷 전화 개통 업무를 부여한 뒤 울릉도로 보내 물의를 빚은 회사도 있다. 이 직원이 전신주와 지붕에 오르지 못하자 정년을 1년 앞두고 업무지시 불이행과 근무태만을 이유로 해고했다. 이 직원은 법정투쟁 끝에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얼마 전엔 또 다른 D사의 3세 경영인이 운전기사에게 비인간적인 횡포를 일삼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룸미러를 접은 채 운전하고, 부회장이 시속 150∼160㎞로 차를 몰 때 조수석에 앉아 지나치는 차량의 차종과 위치를 일일이 부르게 했다.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절대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차후 배려해 주신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수행 가이드’ 문건까지 공개됐다.


지난해 땅콩 회항 사건이나 한 식품업체의 운전기사 폭행사건 기억이 생생한데 또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니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는 극히 일부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 사례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화하면서 가부장적이고 비상식적인 기업 문화가 상당히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일부 기업인의 비뚤어진 의식과 시대착오적인 기업문화가 전체 근로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한다는 점에서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올 1월 25일부터 업무능력이 현저히 낮은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공정인사 지침’과 사회 통념상 합리성 있는 취업규칙 변경을 허용하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근로자를 쉽게 해고하거나, 부당하게 해고할 수 없도록 엄격한 해고 기준과 절차를 확립한 것”이라며 ‘쉬운 해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지침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해고가 불가능하다”고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대우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근로자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게 될 것이고, 결국 정부의 설명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런던 GRM Law의 김세정 변호사는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영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면서 무리하게 절차를 위반하거나 모욕을 가하는 일을 최근엔 거의 본 적이 없다”고 썼다. 부당 해고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데 그럴 경우 손해배상금, 법률 비용 등을 지불해야 하고 운이 나쁘면 신문에 보도돼 회사 평판이 바닥에 떨어지기 딱 좋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회사들이 직원들을 쫓아내면서 놀랄 정도로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여전히 자행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그렇게 해도 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급속도로 고령화되는 한국의 상황을 감안할 때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 5개 법안의 실행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개혁 법안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와 기업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불신을 초래한 것은 직원들을 봉건시대의 농노처럼 여기는 일부 경영자의 책임이 크다.


한국에서 반기업 정서가 심하다고 한탄하기에 앞서 직원들을 모욕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기업문화부터 고쳐야 한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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