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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의 나라답게 피아노 선율 같은 인테리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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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26면

- 중앙SUNDAY는 창간 9주년을 맞아 영자신문 코리아중앙데일리와 공동으로 주한대사관저 탐방을 연재합니다.?서울 주재 각국 대사의 집을 방문해 인테리어에 담긴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1 헝가리 주한대사관저의 응접실은 헝가리제 가구들로 꾸며져 있다.

3 대사관저 정원엔 한국 석탑이 있다. 처버 주한 헝가리 대사 부부는 자주 석탑 옆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첫 주인공이 된 나라는 헝가리. 천재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1811~1886)와 세계적인 장난감 ‘루빅스 큐브(Rubik’s Cube)’의 나라. 수도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파리’로 불린다. 주한 헝가리 대사 처버 가보르와 그의 부인 처버 에디트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관저로 향했다. (헝가리인의 성명은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성·이름’ 순서다.)


주한 헝가리 대사관을 지나 깊은 언덕길을 오르자 높은 주황빛의 벽돌담과 마주쳤다. 초인종을 누르자 처버 대사가 대사관저 현관까지 나와 환한 미소로 취재팀에게 인사를 건넸다. 훤칠한 키의 ‘훈남’ 대사는 곧이어 문을 열어 금발의 처버 부인을 소개하며 노란색이 주조를 이룬 응접실로 안내했다. 추위로 언 몸을 금방 녹여줄 것 같은 따스한 노란색이다.

2 도자기·와인·과자 등 헝가리를 대표하는 물건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이 관저는 10여년 전에 헝가리 외교통상부에서 직접 인테리어를 했어요.” 부인이 말했다. “헝가리 대사로는 저희가 네 번째고 2013년 9월에 부임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2년 반 동안 이곳에서 생활했답니다. 요즘 헝가리 집들은 노랑이나 흰색 같이 밝고 깔끔한 톤을 사용하는 게 트렌드지요.”


응접실은 나무 마룻바닥에 여러 개의 두꺼운 양탄자가 깔려 있고 가로 줄무늬 겨자색 소파가 놓여 있다. 베이지색 벽지와 새하얀 천장에 창문에는 화이트와 골드 배색의 커튼이 쳐져 있다. 전체적으로 무척 정갈하고 차분하되 따스한 느낌이다. 여러 곳의 조명이 따뜻한 느낌을 더한다.

4 응접실 장식장에 놓인 ‘헤렌드’ 도자기 세트.

장식품 중에 눈에 띄는 것은 ‘헤렌드(Herend)’ 도자기 세트. 헝가리의 명물로 처버 부인의 애장품이기도 하다. 1826년 헝가리의 작은 도시 헤렌드에서 시작된 이 도자기 브랜드는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아름답게 꾸민 문양이 매력 포인트다. 세계 4대 명품 접시로 통한다. 한국에서도 찻잔세트가 수십 만원에서 수백 만원에 이르는 고가에 팔리고 있다.


헤렌드의 최대 매력 포인트에 대해 묻자 부인은 망설임 없이 ‘장인정신’을 꼽았다. 그녀는 헤렌드 도자기 하나하나가 꼼꼼한 수작업을 거쳐 탄생되기 때문에 절대 똑같은 도자기가 나올 수 없다고 자랑했다. “헤렌드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헝가리에서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건 전통적인 문양을 고집하지 않고 시대적 관점을 반영한 다양한 패턴을 활용해 참신한 도전을 해왔기 때문이에요. 예전엔 주로 나비와 꽃무늬밖에 안 보였지만 이젠 기하학적 무늬들도 많이 선보이기 때문에 젊은 고객층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응접실·식당·주방이 있는 대사관저 1층에서는 1년 내내 다양한 리셉션들이 펼쳐진다고 처버 대사가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매년 개최되는 한국리스트콩쿠르 시상식이다. 한국리스트협회에서 주최하고 주한 헝가리 대사관이 후원하는 이 대회에서는 초등부부터 일반부, 그리고 외국인부로 구분된 지원자들이 리스트의 작품이나 자유곡을 가지고 치열한 경합을 벌여 우승자를 가려낸다.


헝가리 최고의 피아노 연주가 리스트는 쇼팽·슈만·베를리오즈·파가니니 등과 더불어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에 크게 공헌했다. 그의 기교는 피아노에 오케스트라의 색체를 입혀 생동감을 넘치게 했다는 데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단테 교향곡’ ‘파우스트 교향곡’ ‘교향시 전주곡’ ‘교향시 타소 비탄과 승리’ 등이 있다.


한국리스트콩쿠르 시상식 날이 되면 처버 부인은 손수 준비한 헝가리 디저트와 각종 핑거푸드를 선보인다. “한국 어린이들이 헝가리 디저트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반면에 미성년자가 주인공이 아닌 행사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따로 있죠. 바로 헝가리 술이에요.”

5 부부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헝가리 와인들. 6 조선 반닫이를 닮은 목제 장식장. 헝가리 와인을 보관하는 ‘미니바’ 로 활용된다 [사진 박상문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처버 부부의 ‘보물’인 헝가리 술은 대사관저 지하 1층 와인 저장실에 보관되어 있다. 헝가리 와인은 한국에서는 프랑스·이탈리아나 칠레산 와인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판매량이 현저히 적다. 하지만 꾸준한 홍보를 통해 차츰 인지도가 나아지고 있다고 처버 대사는 강조했다.


“귀빈 60명 규모의 행사에 평균적으로 와인 15병이 소비될 정도로 헝가리 와인은 인기가 좋습니다.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중요한 분들에게 제가 개인적으로 선물하다 보면 일년에 족히 200병 정도 저희 손을 거치는 것 같아요. 지하에 있는 와인 저장실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죠.”


부엌과 연결된 짧은 계단 끝에 위치한 작은 와인 저장실은 수많은 종류의 헝가리 주류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일부는 헝가리 정부에서 지원하고, 일부는 부부가 심혈을 기울여 최고급의 와인들을 직접 골라 수입한다고 한다. 그 중 특히 눈에 띄었던 건 당도가 매우 높아 디저트용으로 즐긴다는 ‘토카이 오수(Tokaji Aszu)’와인, 레드와인의 대표주자 ‘에그리 비카베르(Egri Bikaver)’와 ‘불스 블러드(Bull’s Blood of Eger)’, 그리고 40도 이상의 과일브랜디 ‘팔링카(Palinka)’ 등이었다.


이곳의 온도 유지를 위해 여름에는 에어컨을 가동해 14~15도로 맞추고, 겨울에는 문을 여는 방식으로 10도 내외로 떨어트린다고 대사는 설명했다.


와인 얘기가 나오자 부인은 자신이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며 다시 응접실로 안내해 나무 소재의 와인 보관장을 가리켰다. “앞에 새겨진 문양이 한국적이지 않나요?” 내빈들에게 주류를 대접할 땐 주로 이 장 위에 종류별로 나열하여 바처럼 활용한다고 했다.


“집 안에 가장 한국적인 물품을 꼽으라면 전 이걸 선택하겠어요. 이사 오기 전부터 놓여져 있어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적인 나무장 안에 헝가리 주류를 담아냄으로써 두 나라 간에 화합을 이루게 하는 것 같아 매우 뿌듯하답니다.”


헝가리 대사관저는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에는 침실을 포함한 대사 가족의 개인 생활 공간이 있는데, 2층은 개인 프라이버시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부 사이엔 두 딸(12세, 10세)이 있다.


취재팀이 관저를 떠날 때 부부는 꽃이 필 때 또 오라며 정원의 벚나무를 가리켰다. 4월이 되면 소나무 사이사이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핀다고 했다.


이성은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lee.s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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