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수습회담이 이뤄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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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위 확대로 민주당역할 축소가 문제>
시국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긴박감을 더해 가는데도 정치권의 대응은 늦어지고 있다. 민정당은 노태우.김영삼 회담을 제의하는등 수습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수순은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노.김회담에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였던 민주당측은 시위가 더욱 격렬해지자 하루만에 태도를 바꾸어 이를 거부, 바로 영수회담을 갖자고 나섰다.
상황이 여야 어느쪽도 원치 않는 수준으로 악화되기전에 어떤 회담이든 열려야 하고 민정당이 검토한다는 민주화 조치, 사면.복권, 석방등의 모든 현안에 대타협이 이뤄져야 할 것 같다.
○…민정당은 노.김회담이 시국를 푸는 첫 관문이라고 보았으나 민주당측이 그대신 바로 영수회담을 요구하자 난감해 하고 있다.
노.김회담이 열리면 야권의 여러 가지 요구를 과감히 전향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18일 당사로 노대표를 찾아온 유학성.이종찬의원등은 바깥의 시각을 「심각히」전달하고 정치권이 더 이상 안이하게 나가다가는 감당못할 상황이 올것이란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서울시.경기.충남등 각 시.도별 의원모임에서도 개헌논의 재개와 조속한 노.김회담이 예외없이 거론됐으며 특히 격식이나 조건을 따질 때는 지났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같은 분위기와 더불어 노대표가 17일밤 청와대 회동에서 「재량권」을 확보함으로써 노.김회담을 위한 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더욱 적극성을 보이게 된 것이다.
청와대회동에서는 최근의 시국이 심각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노대표가 중심이 되어 민정당이 정치적으로 시국을 풀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노대표가 전권을 갖고 대야 협상을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민정당은 회담에서 내놓을수 있는 보따리 점검에 착수했는데 우선 민주당측이 노·김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국민운동본부 간부13명의 석방과 김대중씨의 가택연금 해제 문제를 검토, 이를 전향적으로 해결할수 있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운동본부 간부들의 석방은 명동성당점거 농성자를 다풀어준 마당에 굳이 체면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눈치며 김대중씨의 연금해제도 명분상 더이상 버티는 것이 이롭지 못하다는 판단이 우세한 형편이다.
민정당은 또 지금까지 이른바 민주화조치가 별로 이뤄진게 없다고 판단, 만약 노·김회담이 이루어지면 김대중씨의 사면·복권, 4·13철회등 여권이 아파하는 사안도 과감히 논의해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대표는 김대중씨의사면·복권문제에 대해 종래보다 다른 회답을 할수있게끔 정부측과 심각한 토론을 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단 노·김회담이 성사되면 김영삼총재에게 상당한 성과를 안겨줄만한 내용물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유력하다.
민정당은 4·24조치도 굳이 철회나 수정한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개헌논의를 재개할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민정당은 구속자 석방·언론문제까지 노· 김회담의 산물로 다룰 준비가 되어 있는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유연함과 융통성에도 불구, 야당이 새로운 조건을 붙여 노·김회담을 회피한다면 그때는 문제가 달라지며 그후의 전개에 대해서는 예측 불허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노·김회담에 긍정적이었다가 바로 영수회담을 요구하는등 왔다갔다 하는것은 당내외의 강경한 제동이 첫번째 이유고 그 다음은 민정당측의 대응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노·김회담이 민정당측에서 적극성을 띠고 제의 됐을 때 민주당의 김영삼총재와 협상파들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볼수 있다는 자세였었다. 구속자 석방, 김대중씨의 가택연금해제라는 전체조건을 붙이기는 했지만 민정당측이 잘만 호응해준다면 응해볼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우선당내 동교동계가 반발하고 나섰을뿐 아니라 재야 국민운동본부측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었다. 노대표는 시국을 풀어나갈 조치를 취할수 있는 전권이 없다는 것이 가강 큰 이유였다. 잘못하다간 들러리나 설수도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때문에 국민운동본부측은『김총재가 노대표와 만난다면 사전에 우리와 협의가 있을것』 이라고해 사실상 반대입장을 표했었다.
김총재등 상도동측이 노·김회담거부로 선회하게 된데는이밖에 시민·학생들이 전화를 걸어 압력을 가했던 점도 있는것 같다.
더우기 민정당측이 「4·13조치의 바탕위에서」 개헌논의 재개등 대책을 강구한다는 것이 난국을 수습하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본 것 같다.·
국민운동본부측은『개헌논의재개와 같은 것은 속임수일지 모른다』 고. 일축하는 형평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장외 시위 확대와 함께 김총재나 민주당의 역할이 축소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까지 국민운동본부와 민주당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재야단체·학생운동권의 뒷받침을 해주는 식이었다. 그러나 6·10이후 사태가 정치권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는만큼 민주당의 소리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미 국민운동본부측은 민주화 평화대행진이라는 또한번의 대규모 국민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국민운동본부측은 그동안의 국민열기로 보아 1백만명 이상이 참여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국민운동본부측은 피플 파워를 과시하는 장외투쟁을 계속 밀어갈 작정이다.
이와갇은 장외투쟁 방식을 민주당이 거부할수 없게 되어 있다.
이미 『야권의 정치는 민주당의 손을 떠났다』는 말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민주당의 역할이 회복돼야 정치권의 사태수습 노력이 가능해지고 민주당이 이 상황에서 얼마만큼 역할을 하느냐는 문제는 민정당이 어떤카드를 내놓느냐에 달려있다고본다.
그리고 그런 카드는 민주화 평화대행진과 같은 마지막일수도 있는 결정이 내려지기전에 나와야 하고,만약 실기해 시국 수위가 제어할수 없을 정도로 올라간다면 어떤 카드가 나와도 소용없게 될것이라는 깊은 우려를 하고있다.<허남진·박진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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