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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20-해돋이 사진의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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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습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합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고 여행을 떠납니다. 해를 보내고 또 맞기 위해 산이나 바다로 향합니다. 새해 아침이면 동해 경포대, 추암, 정동진, 대왕암, 해운대 등 일출 명소는 인산인해가 됩니다. 연말에는 일몰 여행지로 유명한 순천만이나 서해 변산반도 일대에도 사람이 몰립니다. 연말연시 일출과 일몰은 우리나라 여행업계의 ‘스테디셀러’입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해맞이 전통의 영향이 큽니다.

낙산사.

낙산사.

해맞이는 오래전부터 시인묵객들의 단골메뉴이기도 합니다. 우리 조상은 아름다운 일출 명소에 다니며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습니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관동팔경의 중의 하나인 낙산사 의상대에 올라 해맞이의 감동을 시로 남겼습니다.

‘이화는 벌써 지고 접동새 슬피 울 제/낙산동반으로 의상대 올라앉아/일출을 보리라 밤중만 일어나니/상운이 집피는 동 육룡이 받치는 동/바다에 떠날 제는 만국이 어리더니/천중에 치뜨니 호발을 헤리로다/아마도 열구름 근처에 머물세라/시선은 어디 가고, 해타만 남았으니/천지간 장한 기별, 자세히도 할셔이고…’

목멱조돈.

목멱조돈.

조선시대 낙산사는 배꽃이 유명했나 봅니다. 겸재 정선이 의상대 일출을 그린 작품 '낙산사(사진1)' 에도 배꽃이 나옵니다. 부감으로 그려진 작품에는 낙산사, 의상대와 함께 동해바다에 막 머리를 내미는 붉은 해가 앙증맞게 그려져 있습니다. '목멱조돈(木覓朝暾·사진2)'은 목멱산, 즉 남산의 해돋이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겸재가 65세 때 서울 양천(지금의 양천구 일대)현감으로 부임하던 이듬해에 그렸습니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던 이병연과 시화상간(詩畵相看)을 약속한 것도 이 시기의일입니다. 목멱조돈 그림 왼쪽에는 이병연의 제시가 있습니다. 새벽 빛 한강에 떠 오르니/산 봉우리들 낚싯배에 가리고/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첫 햇살 남산에서 오르네’

문암관일출도

문암관일출도

‘문암관일출도(門巖觀日出·사진3)’는 강원고 고성 삼일포 근처에 있는 문암의 해돋이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문암은 ‘문처럼 생긴 바위’라는 뜻입니다. 두 작품이 전해지는데 국립미술관 소장본은 해돋이를 보기 위해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익살스럽게 표현돼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본에는 갓을 쓴 선비들이 문암 앞 너른 바위에서 일출을 감상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겸재의 일출 작품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는 물론이고 남산에 비켜 뜨는 해도 반만 보여줍니다. 둥근 해를 온전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림과 숨김’의 미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이 대목이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프로 사진가는 ‘해가 뜨고 나면 삼각대를 접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일몰의 경우는 ‘해가 지고 나야 삼각대를 편다’고 말합니다. 일출이나 일몰의 경우 눈으로 보는 풍경과 사진에 찍히는 풍경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눈으로 보면 황홀하고, 멋진 풍경이지만 막상 사진을 찍으면 신통치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눈과 카메라 렌즈의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해가 수평선에서 막 떠오를 때는 홍시같은 색감이 납니다.

해가 수평선에서 막 떠오를 때는 홍시같은 색감이 납니다.

해 안에다 갈매기 등 새 실루엣을 넣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해 안에다 갈매기 등 새 실루엣을 넣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해가 뜨거나 지는 풍경은 역광이 됩니다. 사람의 눈은 동공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며 스스로 밝기를 조절합니다. 밝은 해도, 어두운 산도, 주변에 있는 사람도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측광의 기준점이 하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해돋이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밝은 해와 붉은 노을에 밝기를 맞추면 사람은 깜깜하게 실루엣만 나옵니다. 반면에 사람에 밝기를 맞추면 해와 하늘은 하얗게 타버립니다.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해도, 산도, 바다도 다 잘 나오게 할 수는 없을까요?

두 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라데이션 필터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필터는 윗부분이 검습니다. 즉 렌즈 윗부분을 어둡게 해서 해와 하늘의 밝기를 인위적으로 낮춰서 찍습니다. 다른 하나는 삼각대를 고정시켜 놓고 각각 노출 기준점을 달리해 찍은 두 장의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는 궁여지책일 뿐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색감이 부자연스럽고 유치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해가 뜨거나 지는 풍경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됩니다. 해뜨는 위치를 미리 예상해서 구도를 잡고 기다려야 합니다. 해가 막 떠오르기 직전이나, 지고 난 뒤를 노려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노출 차이가 적기 때문에 하늘의 붉은 기운과 주변 풍경이 비교적 잘 나타납니다.

만약 해를 직접 찍고 싶을 때는 산보다는 바다가 유리합니다. 수평선에서 해가 막 떠오를 때는 빨간 홍시같은 색감이 나옵니다. 강하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또 반사광으로 인해 붉게 물든 물색도 잘 표현됩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처럼 해가 반쯤 떠 있을 때 찍는 것이 운치가 있습니다. 일출 일몰 사진은 해와 하늘의 붉은 기운이 잘 나타나야 대자연의 숭고미가 부각됩니다. 노출을 하늘에 맞추고 바다에 떠 있는 고깃배나, 해변에 있는 사람 등은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일몰사진에서 흐린날 해와 함께 인물 실루엣을 배치하는 것도 운치가 있습니다.

일몰사진에서 흐린날 해와 함께 인물 실루엣을 배치하는 것도 운치가 있습니다.

산에서 찍는 해돋이 사진은 운해가 드리워지거나 안개가 껴 있는 경우가 더 낫습니다. 수증기가 빛을 확산시키기 때문에 하늘과 산의 밝기 차이가 줄어듭니다. 해와 붉게 물든 하늘은 물론이고 첩첩이 이어지는 능선의 실루엣과 그라데이션이 잘 묘사됩니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 일출이나 일몰 사진은 아주 맑은 날 보다 약간 흐린 날을 선택합니다.

미시령, 2015

미시령, 2015

대왕암, 2013

대왕암, 2013

해를 피하고 주변의 노을빛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해돋이 풍경을 찍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사진3은 미시령 옛길 정상에서 본 인제방향의 일몰 풍경입니다. 해가 넘어가고 난 뒤 부드러운 노을빛으로 능선의 그라데이션을 담아 봤습니다. 사진4는 감포에 있는 문무대왕릉 풍경입니다. 파도에 반사되는 붉은 빛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해돋이를 표현했습니다.

글, 사진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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