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각주차 정도는 익히고 오세요"…불 면허 시험 첫날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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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이 정도로 까다롭진 않았어요. 3년 동안 운전을 하고 왔는데도 기능시험 하나를 통과 못 했네요.”

22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 1종 보통면허 기능시험에서 탈락한 중국인 리광(32)씨는 고난도의 운전 코스에 혀를 내둘렀다. “학원은 다니지 않았지만 충분히 자신 있다”며 차량에 탑승한 고등학교 3학년 이성진(19)군 역시 시험 시작 3분 만에 경사로에서 기어조작 미숙으로 실격처리됐다.

이른바 ‘불면허시험’으로 불리는 강화된 운전면허시험 시행 첫날. 장내 스피커에는 실격 통보가 5분 단위로 연이어 흘러나왔다. 이날 오전 16명이 기능시험에 도전했지만 이중 합격자는 단 1명. 그마저도 면허취소로 재시험을 본 운전 경력자였다.

응시생들에겐 코스 곳곳이 함정이었다. 최고 난이도로 예상됐던 직각주차 구간은 물론, 경사로 구간과 신호변경 구간 등에서도 골고루 실격자들이 나왔다. 시작과 동시에 켜진 급제동 사인을 무시해 1분 만에 실격당한 응시생도 있었다. 대부분이 이번에 새로 도입된 구간들이다.

실격자들이 속출하자 관리자들까지 덩달아 분주해졌다. 실격자가 나오면 관리자들은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해당 차량으로 달려가 운전대를 바꿔 잡아야 한다. 5명의 현장 관리자들이 코스 안에 배치되었지만 기존 50m에서 300m로 늘어난 코스와 5분 단위로 나오는 실격 방송 탓에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면허시험장 관리 5년 경력의 이진섭 차장은 “이제는 예전처럼 느긋하게 관리를 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다”며 “10명 중 8명이 통과하던 시험이 1명도 통과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장내 안내방송을 5년간 진행한 황윤정 과장도 “실격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많이 말한 적이 처음이다”며 “첫 번째 합격자가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고 말했다.

그동안 ‘물면허’라 불릴 만큼 쉬웠던 운전면허시험이 확 바뀌게 된 건 2011년 6월 이후 간소화된 면허시험 탓에 교통사고 위험성이 커졌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번에 개정된 운전면허시험에선 기능시험의 경우 직각주차가 부활하고 도로폭도 3.5m에서 3m로 좁아졌다. 또한 경사로구간에서 정지 신호가 도입되며 신호 교차로, 가속코스 등이 추가돼 기존 2개 평가항목이 7개로 늘어났다. 학과시험은 문항 수가 기존 730개에서 1000개로 늘어났다. 난폭ㆍ보복운전 금지 등 최근 개정된 법령과 보행자 보호, 긴급 자동차 양보 등 안전운전에 필요한 교통법규가 문항에 추가됐다.

김민관 기자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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