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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 못 견뎌 헤어진 자매 55년 만에 상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계모의 끔찍한 학대를 피해 가출했던 자매가 55년 만에 환갑을 넘긴 할머니가 되어 극적으로 상봉했다.

이름·주소도 잊었지만 백방 수소문
경찰, 그해 태어난 여성 다 뒤져 확인
어린 시절 기억 더듬어 “너 맞구나”

A씨(61)는 1961년 당시 6세 때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는 계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듯 서울 집을 나왔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을 잃었고 보육시설을 전전했다. 친언니 B씨(62)도 얼마 뒤 계모의 학대를 피해 가출해 외가와 보육원 등을 떠돌았다. 가출한 지 얼마 후 A씨는 집을 찾으려 했지만 집주소와 생년월일 등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매는 이후 수십 년을 만나지 못했다. A씨는 계모의 매질에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늘 자신을 따스하게 보듬어 주던 친언니의 손길과 얼굴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가정에 입양된 A씨는 어느새 성인이 됐고 결혼해 가정도 꾸렸지만 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세월이 흘러 여섯 살 소녀는 환갑을 맞았고 더 늦기 전에 언니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언니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가슴만 태워야 했다.

그러던 중 이달 초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잃어 버린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가족의 권유로 인천 부평경찰서를 찾았다. 정부 차원에서 해주는 DNA 검사는 직계만 해당돼 언니의 이름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전산망의 도움을 받으려면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닥쳤다. A씨가 아는 것은 언니 성과 이름 앞 글자 정도였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부평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직원들은 A씨의 언니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해의 여성을 대상으로 범위를 좁혀 나갔다.

마침내 경찰은 경기도 광명에 거주하는 B씨(62)를 언니로 확신하고 수차례 연락했다. 그런데 B씨는 경찰이 전화할 때마다 보이스피싱으로 오인해 전화를 끊어 버렸다. 경찰의 계속된 설득에 B씨는 결국 “내 눈으로 봐야겠다”며 경찰서를 직접 찾았다.

55년 만에 만난 자매는 처음에는 서로를 의심하다 추억을 조각조각 맞췄고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연탄 장사를 하던 아버지와 계모의 괴롭힘, 집 근처 환경 등이 둘에게 확신을 줬다. 안타깝게도 신문에 광고까지 내며 딸들을 애타게 찾았던 아버지는 이미 20년 전 사망했고 계모도 15년 전에 숨진 뒤였다.

B씨는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을 찾게 돼 뭐라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A씨는 “설 명절에 함께 아버지 산소에 가자”고 말했다. 자매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인천=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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