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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인구 비율 10% 넘어선 영암·음성은 ‘작은 아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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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8일 오후 충북 음성군 대소면 전통시장. 페인트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키르기스스탄 출신 알리(32)가 동료들과 장을 보고 있었다. 알리는 “닭 2개 잘라주세요. 하나에 5000원? 1000원만 깎아주세요”라며 상인과 흥정을 했다. 중국·동남아·몽골 등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푸드마켓’에서는 스리랑카 출신 아키라(29)가 저녁 준비를 위해 콩과 건조멸치를 샀다. 아키라는 “음성에 일자리가 많아 친구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외국인이 지역 경제를 이끄는 동네가 있다. 외국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전남 영암군과 충북 음성군 얘기다. 외국인 단골 옷가게와 식당이 있고, 외국인 전문 생필품점과 원룸촌까지 생겼다. 제조업 기피 현상에다 생산직 근로자가 부족한 농촌 지역을 외국인 근로자가 메운 결과다. 19일 통계청의 지난해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영암은 인구 6만1535명 중 외국인이 10.2%(6258명)로 전국 시·군·구 중 외국인 비율이 서울 영등포구(12.1%) 다음으로 높다. 음성은 인구 10만2023명 중 외국인 비율이 10.1%(1만288명)로 세 번째로 높았다.

19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 외국인 원룸촌. 거리에는 ‘월드 푸드 마트’ 등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가들이 즐비하다. [프리랜서 오종찬]

19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 외국인 원룸촌. 거리에는 ‘월드 푸드 마트’ 등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가들이 즐비하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9일 오후 6시쯤 찾은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에는 외국인 원룸촌이 형성돼 있었다. 주로 인근 대불국가산업단지 등지의 기업에서 일하는 동남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이 산다. 일을 마친 외국인 근로자들은 겨울 추위가 익숙하지 않은 듯 두꺼운 작업용 점퍼와 털모자로 몸을 감싼 채 각국의 식료품을 파는 ‘아시아 마트’에 들어가기 바빴다.

음성은 1996년부터 시작된 산업단지 개발로 화학·의약·전기·금속 등 제조업체 수가 크게 늘면서 외국인 비율이 높아졌다. 증가한 일자리는 주로 외국인 근로자로 채워졌다. 95년 음성 인구의 0.2%(177명)를 차지하던 외국인 비율은 2010년 2.9%(2443명)로 늘었고 지난해 10%를 넘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196개 산단 입주기업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외국인이 많은 이들 지역은 ‘작은 아시아’(little Asia·미국 등지의 아시아인 집단거주지역)를 연상케 한다. 대소면 곳곳에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식당과 외국인 전용 식재료 마트 5곳이 성업 중이다. 옷가게를 하는 김영석(44)씨는 “동남아·러시아계 근로자들이 작업복과 일상복·배낭을 사기 위해 자주 찾아온다”고 말했다.

영암 삼호읍 용앙리에는 외국인 취향에 맞춘 미용실, 외국인 전용 술집은 물론 오리혀·오리발 등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식재료를 파는 식육점도 있다. 용앙리에서 5년째 베트남 식당을 하는 넉 미(60)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근로자들은 함께 자주 식사를 한다”며 “이 곳 상점 은 외국인 근로자가 주요 고객”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이 바꾼 지자체 풍경
농촌 산업단지 국내 근로자 기피
동남아·중국·몽골 출신이 메워
출신국별 전문 마트·식당 성업
“저임금 등 부당대우 없게 돕고
범죄 등 부작용 줄일 정책 필요”

한국인 주민들 사이에서는 만족과 우려가 교차한다. 음성군 금왕읍에서 직업소개소를 하는 김상오(59)씨는 “ 하루 평균 80~90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알선해 준다”며 “이들이 없으면 지역경제가 안 돌아간다 ”고 말했다. 영암군 삼호읍 주민 이모(51·여)씨는 “ 술에 취한 외국인들이 밤에 돌아다니는 모습 에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남대 박해광(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외국인들이 한국인과 교류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범죄·갈등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며 “외국인들이 부당한 저임금, 임금 체불 문제 등을 겪지 않도록 체계적인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음성·영암=최종권·김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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