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다쳐 아래만 보던 베트남 아이, 한국서 새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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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베트남에서 온 키에유기아바크(왼쪽)가 15일 한림대성심병원 입원실에 누워 ‘V’ 자를 그리고 있다. 엄마 호앙티타오(오른쪽)와 김석우 한림대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가운데)가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림대성심병원]

베트남에서 온 키에유기아바크(왼쪽)가 15일 한림대성심병원 입원실에 누워 ‘V’ 자를 그리고 있다. 엄마 호앙티타오(오른쪽)와 김석우 한림대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가운데)가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림대성심병원]

15일 오전 경기 안양시 한림대성심병원 입원실. 장난감 경찰차를 쥐고 침대에 누워 있는 네 살배기 남자아이에게 윤금선 수간호사가 다가갔다. “응어이뚜엣”(눈사람)이라며 인형을 선물하니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껴안고 베트남어로 “신깜언”(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교통사고 중상 현지선 수술 꺼려
김석우 교수 소개받은 아이 엄마
간절한 영어 e메일로 소원 이뤄

아이의 이름은 키에유기아바크. 불과 100일 전만 해도 키에유기아바크의 미소는 상상할 수 없었다. 지난 9월 초 베트남 하노이 인근 박장시에서 아이의 가족이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 차량과 충돌했다. 안전띠를 하지 않았던 아이는 목이 아래쪽으로 50도 정도 휘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목뼈가 다치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다행히 신경 손상과 뼈 이탈에 그쳤다.

그러나 하노이의 비엣득 대학병원은 수술을 꺼렸다. 수술 중 신경에 이상이 생기면 전신마비에 이를 수도 있었다. 때문에 아이는 목 주변에 월계관 모양의 특수 고정장치를 한 채 두 달간 누워 있어야 했다. 이대로라면 땅을 바라보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비엣득 대학병원의 한 의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한국에서 지도를 받은 적 있는 김석우 한림대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척추센터 소장)를 떠올렸다.

어머니 호앙티타오가 한국 의료진에 보낸 e메일.

어머니 호앙티타오가 한국 의료진에 보낸 e메일.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엄마 호앙티타오(30)는 남동생과 의사의 도움을 얻어 지난달 13일 김 교수에게 영문 e메일을 보냈다.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한국에서 치료받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답장을 보내주세요.”

e메일을 읽은 김 교수는 빠듯한 수술 스케줄을 조정했다. 세부 사항을 조율하느라 10여 통의 e메일이 오갔다. 그는 “엄마의 편지 한 줄 한 줄마다 절박함이 묻어났다. ‘교수님이 꼭 치료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바로 한국행을 권했다”고 말했다. 아이 엄마는 가족·친지의 도움을 얻어 수술비와 항공료 등을 마련했다.

마지막 걸림돌이 있었다. 불법 체류 가능성을 들어 비자가 두 번이나 반려됐다. 당초 잡았던 수술 날짜도 연이어 미뤄졌다. 결국 김 교수 등의 도움으로 지난 10일에 보름짜리 비자가 나왔다. “든든한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들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네요.” 엄마가 보낸 마지막 e메일엔 항공편 일정과 함께 이 같은 희망의 메시지도 담겼다.

11일 휠체어에 탄 아이가 엄마와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프다”고 연신 되뇌던 아이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했다. 응급차로 한림대 성심병원에 이송된 아이는 이틀 후 6시간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 회복실로 옮겨진 아이는 엄마와 함께 한동안 울었다. 아이는 아파서, 엄마는 기쁘고 미안해서였다.

오랜 병원 생활에 지쳐 한때 의사 가운만 보면 얼굴을 찡그렸던 키에유기아바크는 이제 김 교수를 보고 웃는다. 아래만 바라봐야 했던 아이는 이제 다시 앞을 보고 있다. 베트남으로 돌아가 근육 운동 등 회복 과정만 거치면 된다. 미소를 되찾은 엄마는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저 행복할 따름이죠. 세 달간의 맘고생이 다 씻겨 내려가는 거 같아요.”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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