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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과학기술, 전쟁이 만든 위대한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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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힌두교의 신 시바.  [사진 Bhajans Kirtans and Hindu Prayers]

인도 힌두교의 신 시바. [사진 Bhajans Kirtans and Hindu Prayers]


 전쟁은 부수고 죽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일을 더 잘하려고 궁리를 하는 가운데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그 기술 덕분에 인간은 풍요롭게 살게 됐습니다. 이와 같은 전쟁의 역설은 파괴와 함께 창조를 관장한다는 힌두교의 신 시바(Shiva)를 연상케 합니다.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ㆍ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을 보면 그 역설을 실감합니다. 1957년 10월 4일 옛 소련이 세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미국이 소련보다 과학기술에 뒤졌다는 사실 때문이죠.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사진 NASA]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사진 NASA]


 이듬해 2월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고등연구계획국(ARPAㆍ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을 세우도록 지시했습니다. 설립 취지는 ‘적의 기술적 진보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적을 기술적 진보로 놀라게 한다(prevent technological surprise to the US, but also to create technological surprise for US enemies)’였습니다. 이 기관은 72년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AP)로 이름이 바뀌죠.
DARPA의 로고.  [사진 DARPA]

DARPA의 로고. [사진 DARPA]

 DARPA는 처음엔 군사기술과 우주기술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DARPA가 일군 기술적 성과는 민간 부문으로 넘겨졌고, 이런 것들이 미국 경제의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의 옛날 이름은 ‘아파넷(ARPANet)’입니다. 여기서 아파(ARPA)는 그 ARPA 맞습니다. DAPRA의 전신인 고등연구계획국(ARPA) 말입니다.

1969년 아파넷(ARPANet) 지도.  [사진 US도밍게스 힐스]

1969년 아파넷(ARPANet) 지도. [사진 US도밍게스 힐스]


 인터넷은 냉전의 산물이었습니다. 핵 전쟁이 일어나면 소련이 미국의 컴퓨터 네트워크도 공격할 게 뻔합니다. 이 때 전국의 컴퓨터를 통신망으로 연결하면 일부가 파괴더라도 나머지 컴퓨터는 작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ARPA는 이런 네트워크 연구에 열중합니다.
 72년 아파넷 지도.  [사진 위키피디어]

72년 아파넷 지도. [사진 위키피디어]


 이 때문에 인터넷이 만들어졌습니다. 69년 10월 29일 오전 10시 30분 아파넷을 통한 통신이 처음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인터넷의 생일이죠. 그 해 말 UCLA, UC산타바바라, 스탠퍼드 대학, 유타 대학 등 네 곳의 컴퓨터가 아파넷에 연결됐으며, 72년 e메일이 도입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아파넷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2005년 인터넷 지도. [사진 Opte Project]

2005년 인터넷 지도. [사진 Opte Project]


 73년 아파넷은 영국과 노르웨이와 연결하면서 국제 통신망으로 거듭났습니다. 74년 당시 스탠퍼드 대학의 빈트 그레이 서프 등이 인터넷(Internet)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82년 미국 국방부는 군사용 네트워크를 따로 빼 아파넷을 민간용 네트워크로 재정비한 뒤 90년 아파넷 운용에서 손을 뗍니다.
더글러스 엥겔바트와 NLS.  [사진 Computer History Museum]

더글러스 엥겔바트와 NLS. [사진 Computer History Museum]


 윈도, 마우스, 웹, 영상통화도 DAPRA의 산물입니다. 60년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더글러스 엥겔바트는 DAPRA(당시는 ARPA)ㆍ미 공군ㆍ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아 ‘인간의 지성을 강화하는 포괄 체계(a comprehensive framework for augmenting human intellect)’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69년 온라인 시스템(NLSㆍoN-Line System)을 선보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마우스.  [사진 Computer History Museum]

세계 최초의 마우스. [사진 Computer History Museum]

NLS의 비디오 콘퍼런스.  [사진 위키피디어]

NLS의 비디오 콘퍼런스. [사진 위키피디어]

  이 시스템은 모니터와 키보드, 그리고 마우스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여러 개의 문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창(windows)을 여러 개 열도록 했고, 문서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링크를 달았습니다. 또 비디오 컨퍼런스를 통해 다른 곳에 있는 사람과 영상으로 통화할 수 있습니다.

제록스 알토 컴퓨터.  [사진 Plyojump]

제록스 알토 컴퓨터. [사진 Plyojump]


 로버트 윌리엄 테일러는 제록스 연구소에서 NLS를 좀 더 발전시킨,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컴퓨터인 알토(Alto)를 만들었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79년 이 컴퓨터를 보고 충격을 받아 비슷한 컴퓨터 제작을 지시한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래서 83년 애플의 리사(Lisa) 컴퓨터가 나왔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는 2년 후인 85년 리사의 GUI에서 영감(?)을 받은 윈도(Windows) 1.0을 출시했습니다. 애플은 ‘GUI를 베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애플에 앞서 알토, 그보다 더 전에는 NLS가 있었다는 걸 스티브 잡스가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스펀 영화 지도.  [사진 Motherboard]

애스펀 영화 지도. [사진 Motherboard]


 DARPA는 구글 스트리트뷰(Street View)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79년 MIT 연구팀은 DARPA의 지원을 받아 ‘애스펀 영화 지도(Aspen Movie Map)’을 제작했습니다. 이 지도는 미국 콜로라도의 대표적 관광지 애스펀을 영상으로 촬영한 뒤 이를 지도로 옮긴 것입니다. 실제 거리를 돌아다는 것처럼 느껴질 뿐더러 역사가 오래된 건물은 예전 모습까지 보여줬습니다. 이 기술이 더 발전돼 2008년 구글이 스트리트뷰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엔테베 작전이 끝난 뒤 기념 사진을 찍은 이스라엘 특공대.  [사진 IDF Blog]

엔테베 작전이 끝난 뒤 기념 사진을 찍은 이스라엘 특공대. [사진 IDF Blog]


 왜 DARPA가 MIT의 이상한 지도 연구에 돈을 줬을까요? 76년 이스라엘 특공대는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작전을 유심히 지켜 본 미 국방부는 ‘영화 지도’ 같은 게 있으면 군이 낯선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DARPA가 기술적 혁신을 쏟아내는 걸 보고 ‘외계인을 잡아 고문해 연구를 시키는 곳이 DARPA’라고 농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 테터 전 DARPA 국장은 성공 비결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①작고 유연한 조직=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해 DARAP는 프로젝트 매니저와 연구 개발자 등 2단계의 상하구조를 유지합니다. 실력만 있으면 공무원 임용자격에 미달하는 사람도 프로젝트 매니저로 뽑을 수 있습니다. 연구와 상관없는 행정ㆍ지원인력은 국방부나 군에서 끌어다 씁니다. 이러면 관료 조직이 비대해지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4~6년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합니다. 개별 과제는 3~5년만 진행합니다. 그 이상 길어지면 뒤처진 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실장급 간부들은 순환보직을 원칙으로 합니다. 머리가 굳지 않도록 한 조치입니다.

 ②실패해도 괜찮다=DARPA는 점진보다는 혁신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무모한 과제라도 투자합니다. 실패한 연구도 용납합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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