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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문학평론가 인하대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오늘날 이땅에서 가장 중요한 문체의 하나는 정의로운 부의 축적이며, 그 정당한 분배다. 정당한 분배, 즉 평등의 실천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내포한 제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평등이란 자유와 함께 인류에 있어 가장 근원적인 속성이자 모든 인간의 생명적 권리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평등은 몇가지 측면을 지닌다. 그것은 민족과 민족, 인종과 인종간의 평등이며, 사회적인 신분상의 평등이다. 또한 성에 있어서의 평등이며, 신체적인 면에서의 평등이다. 아울러 지역과 지역간의 평등을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적인 면에서 평등의 문제는 주제(내용) 면에서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창작주체(작자) 면에서 논의할 수도 있다.
윤재철씨의 시집 『아메리카 들소』는 민족간의 평등을 문제 삼으면서 약소민족으로서의 울분과 비애를 강력히 표출한다.
들소같은 한 미군의 모습을 통해서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간의 평등실현이 사람다운 삶의 실천에 있어서 소중한 명제임을 강조한다.
들소같이 거대한 체구의 미군과 철조망에 매달려 껌을 외치는 「나」, 그리고 총맞아 쓰러지는 인디언 모습의 대조속에는 정복자와 피지배자, 가진자와 못가진 자 사이의 깊은 단절과 잘못된 지배논리에대한 통렬한 고발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사회적인 평등의 한 측면은 최근들어 활발해진 근로자 시인들의 시집간행에서 찾아볼수 있다. 80년대에 이른바 등단 자율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시가 문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라는 자각이 확대되어 갔다.
공사판 인부·농민·안내양등 다양한 근로계층의 사람들이 그들의 척박한 삶을 시로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발간된 철근공 김기홍씨의 시집 『공친날』이 그 한 예다. 「흔들리지 말기/ 이대로는 이 철근위에서/ 강바람 몰아치는 현장/ 저 바닥/ 열두시간 4천원, 노동을 파는」(『흔들리지 말기』)이라는 한 구절처럼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삵의 어려움과 함께 강인한 극복의지가 표출돼 있는 것이다.
신체적 면에서 평등의 문제는 시집 『산골소녀 옥진이 시집』에서 한 예를 찾아볼수 있다. 여고시절인 19세때 산성위에서 실족해 전신마비가 되어 8년동안 누워지내며 시를 써온 김옥진양이 병상의 고통과 절망을 노래한 시집을 간행했다. 「자그마한 접시 위에/ 나는 홀로 서있어요/ 불을 밝히고서/ 뜨거움에 뜨겁게/ 내몸이 녹아 흘러/ 내 키를 작게 작게 만들어 가도/ 나는 빛의 요정/ 행복해요」(『촛불의 독백』)라는 구절 속에는 불구와 병고를 딛고 일어서려는 참담한 생명의지가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고양돼 있다.
이들의 시는 오늘날에 있어 시가 당대의 고통받는 삶, 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와 극복의 힘을 심어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삶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한 것처럼 문학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평등을 올바로 실천하려는 노력가운데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 있는 사회가 열릴 것은 자명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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