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자리 너무 불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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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스승의 날」이 다가오자 S씨 (56·전 서울D여고교감)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지난해 교직에서 억울하게 쫓겨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5월이면 제자들과 어울리던 지난날이 그리워서다.
S씨가 30년 교육자 생활을 「불명예 제대」로 끝낸 것은 지난해 7월. 같은 재단의 D여중 음악·미술과 시간강사를 고교가 채용한 것처럼 만들어 강사료를 부담해 달라는 서무과장 C씨(46)의 협조요청을 거절했던데서 생긴 일이다. 중학교에서는 시간강사를 쓰면 강사료 국고보조를 못 받으니 고교가 채용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달라는 것이었다. C과장은 재단이사장 K씨의 측근.
며칠 뒤였다. 간부회의석상에서 S교감과 C과장은 다시 맞섰다. 이번에는 시간초과수당건. 교무주임이 『1주일이나 지급요구서를 서랍 속에 묵혀둘 수 있느냐』고 C과장에게 항의, 입씨름이 벌어졌다.
S씨가 『그건 과장이 잘못했다』고 나무라자 C과장이 벌컥 화를 낸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다음날 교장이 「화해모임」이라고 부르더니 S교감에게「사표」를 요구했다.
『서무과장이 어제 사표를 썼는데 나도 쓸테니 교감·교무주임 당신들도 사표를 써 이사진에 신임을 묻자』고 했다.
S교감은 『교사가 언제 재단신임을 물어가며 근무했느냐』고 거부했다. 그러나 교장의 압력은 계속됐다.
교과운영방안을 작성, 결재를 올리면 트집을 잡기 일쑤였다. 교사들로 부터는 『교장이 당신을 헐뜯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도 들려왔다. 『선생님이 되겠다는 뜻을 세운 뒤 사범학교와 사범대를 나와 30년동안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나이들어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S씨는 서럽기조차 했다.
방학식날 조용히 교장실을 찾아 『불편한 관계를 덜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신임사표」를 계속 요구, 『설마 좇아내기까진 않겠지』하는 심정으로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그런 뒤 며칠만에 간부회의석상에서 교장은 뜻밖의 「사표수리」를 발표하는 것이 아닌가.
이날 저녁 평소 자신을 따르던 L모교사가 술을 사겠다고 했다.
『교감선생님이 눈밖에 난거예요. 애들 자율학습할 때 형광등 더 설치해야한다고 하셨죠. 화장실고리 부서진 것은 여학생들이니 우선적으로 고쳐줘야 한다고 하셨고, 학생들 자치활동비로 1천여만원이나 거둬놓고 왜 반도 안쓰려고 하느냐는 등 사사건건 「돈 드는 쪽」으로만 나서셨으니 좋아할 리가 있겠어요. 』
다음날 중2인 막내딸이 학교에 가는 뒷모습을 보며 결심했다. 이사장을 찾아가 『제가 잘못했으니 한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빌었으나 『이사회결정사항으로 곤란하다』며 잡아뗐다.
『그 뒤 육성회회장단이 교장에게 찾아가 저의 사표수리는 부당하니 되돌려 주라고 했대요. 그런데 교장대답이 걸작입니다. 「그 사람(S교감)은 온갖 부정 다 저질러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사람이었읍니다. 경찰수사 안 받은 것만도 다행이지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
교장이 든 「교감의 부정」은 수학여행때 여관주인에게 10만원 받은 것과 부교재 채택비로 교사들이 출판사에서 받은 사례금 일부를 거두었다는 것. 『여관을 지정한 것은 교장이었고 사례금갹출은 학교등사기 구입목직을 밝히고 연구주임에게 거둬 보관하라고 일러둔 것이었지요. 좇겨난 것도 억울한데 누명까지 쓴 셈이지요. 』
서울시교위에 탄원서를 냈으나 『사표가 강제임을 단정지을 확증이 없다는 짤막한 회답이 왔다.
대한교련 박진석 교권과장(42)은 『학교 경영자는 물론 사회전체가 교권에 관심을 갖고 제도적으로도 교사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확립돼야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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