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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빵 ‘슈톨렌’ 어떤 맛이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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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크 대신 즐기는 크리스마스 빵

타원형의 투박한 빵 위에 하얀 슈거 파우더가 눈처럼 쌓였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빵 ‘슈톨렌(stollen)’의 첫 인상이다. 표면이 딱딱한 빵을 칼로 슥슥 썰어보니 속을 풍성하게 채운 건과일·견과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묵직하게 퍼지는 럼과 과일의 숙성된 향도 코를 간질인다. 모양도, 풍미도 낯선 이 독일 빵이 올 크리스마스엔 ‘동그란 케이크’ 자리를 넘보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빵 슈톨렌은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럼에 절인 건조 과일과 견과류의풍미가 깊이 베어들어 맛이 좋다. 묵직한 풍미 때문에 커피·위스키·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독일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빵 슈톨렌은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럼에 절인 건조 과일과 견과류의풍미가 깊이 베어들어 맛이 좋다. 묵직한 풍미 때문에 커피·위스키·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슈톨렌이요? 12월 1일부터 판매합니다.”

지난달 29일 마포구 도화동 카페 겸 빵집 ‘프릳츠커피컴퍼니’엔 슈톨렌 판매시기를 묻는 전화가 잇따라 걸려왔다. 전화를 건 이들은 대부분 지난해 슈톨렌을 먹어본 사람들이다. 허민수 오너 셰프는 서교동에서 ‘오븐과 주전자’라는 작은 빵집을 연 2010년부터 슈톨렌을 만들었다.

“빵만 만들던 가게에서 크리스마스라고 갑자기 케이크를 만들 순 없잖아요.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빵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예전에 독일인 혼혈 제빵 선생님께 배운 슈톨렌이 생각났어요.” 허씨의 슈톨렌을 맛본 사람들은 다음해 어김없이 슈톨렌을 찾았다. 첫 해는 12월 한 달 동안 고작 30개를 만들었지만 매년 100개씩 생산량을 늘렸고 올해는 600개 정도 만들 예정이다.

용산구 한남동의 빵집 ‘오월의종’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1200개의 슈톨렌을 팔았다. 정웅 오너 셰프는 “처음 슈톨렌을 만들었던 10년 전엔 크리스마스 시즌 한 달 동안 겨우 10개를 만들었는데 10년 만에 생산량이 100배가 넘었다. 특히 올해는 우리 집뿐 아니라 다른 빵집들까지 가세해서 슈톨렌 전쟁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의 전통 빵,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다

최근 독일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빵 슈톨렌(Stollen)의 국내 인기가 뜨겁다. 독일에선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매주 일요일에 가족들과 한 조각씩 나눠먹는 풍습이 있다.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선 매년 연말 도쿄에서 슈톨렌 축제가 열릴 정도로 인기다. 하지만 국내에선 생소한 이름이었다. 직장인 양수연(36)씨는 “대학생 때 갔던 유럽 배낭여행에서 처음 먹어보고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한국에서 찾아다녔는데 구할 수 없었다”며 “3년 전부터 호텔 내 빵집뿐 아니라 동네 작은 빵집에서도 팔기 시작해서 반가웠다”고 말했다.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아 빵집들은 포장에 신경쓴다. [사진 성심당]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아 빵집들은 포장에 신경쓴다. [사진 성심당]

실제로 국내 슈톨렌의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임피리얼팰리스 호텔 내 아마도르 베이커리의 경우 지난해 판매량이 20% 증가했다.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 대목을 앞두고 JW메리어트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밀레니엄 서울 힐튼, 그랜드 앰배서더,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콘래드 서울 등 특급호텔 델리들도 11월 말부터 슈톨렌 판매를 시작했다. 리치몬드과자점, 오월의종, 프릳츠커피컴퍼니, 라뜰리에모니크, 르빵, 쉐즈롤, 성심당, 파리크라상 등 유명 빵집에서도 슈톨렌 생산에 들어갔다. 가격은 크기와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1만원~4만원 선이다. 튀김소보로 같은 전통빵집으로 유명한 대전의 성심당도 매년 슈톨렌 판매량이 증가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30% 정도 생산량을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슈톨렌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불과 2~3년 전. 2010년쯤 발효종을 이용하는 식사용 빵 전문 빵집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슈톨렌도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달달한 디저트 류를 만들지 않는 빵 전문점들에서 연말에 유럽의 크리스마스 빵들을 선보이면서다. 고객들 역시 ‘크리스마스엔 동그란 생크림케이크’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깬 슈톨렌의 모습을 신선하게 느꼈다. 게다가 슈톨렌은 12월 한 달 동안만 판매하기 때문에 희소성도 높다. 신태화 JW메리어트 서울 델리카테슨 셰프는 “국내에도 세계의 유명 디저트들이 속속 들어와 언제든 쉽게 맛볼 수 있게 됐는데, 슈톨렌은 12월 한 시즌에만 만날 수 있는 한정품이라 요맘때쯤 찾는 이들이 특히 많다”고 말했다.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정웅 오너셰프는 “함께 나눠 먹는 전통 때문에 다른 집을 방문할 때 선물로 의미가 있고, 평범치 않은 크리스마스 푸드라는 점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평소 포장에는 신경 쓰지 않던 빵집들도 슈톨렌 만큼은 빵집 로고나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이미지가 들어간 전용 박스와 포장지를 제작하거나 리본을 사용해 판매한다.

빵 매니어들이 유명한 빵집을 찾아다니며 인증샷을 남기는 이른바 ‘빵지순례’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2~3년 전부터 12월이면 이들이 SNS에 ‘크리스마스 빵’으로 슈톨렌을 올리기 시작한 것. 자타공인 ‘빵 매니어’로 통하는 김선영(37)씨는 “2~3년 전부터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곳저곳의 슈톨렌을 비교하고 먹어본 것을 자랑하는 문화가 생겼다”며 “슈톨렌을 몰랐던 사람들도 ‘도대체 무슨 빵인데 저 난리야? 나도 한 번 먹어보자’하는 분위기가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커피·홍차 쓴 맛 중화 … 와인마실 땐 안주로

슈톨렌은 풍미가 강해 얇게 잘라 먹어야 재료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사진 프릳츠커피컴퍼니]

슈톨렌은 풍미가 강해 얇게 잘라 먹어야 재료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사진 프릳츠커피컴퍼니]

겉보기와는 다른 슈톨렌의 ‘반전의 묘미’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손으로 반죽해 만든 투박한 모양 그대로의 타원형은 옛날 수도사들이 걸쳤던 망토 위에 눈이 쌓인 풍경 또는 강보에 쌓인 아기 예수를 형상화했다고 전해진다. 소박한 겉모양과는 달리 속은 풍성하고 고급스럽다. 1~2년간 브랜디나 럼에 절인 건조 과일, 호두·아몬드 같은 견과류, 동그랗게 빚은 마지판(아몬드·설탕을 갈아 만든 페이스트)을 반죽 안에 넣어 진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겉보기엔 다이어트에 좋은 건강빵처럼 보이지만 구워진 빵을 버터에 담그는 과정을 2~3번 반복한 후 슈거 파우더를 듬뿍 뿌리기 때문에 칼로리는 생크림케이크만큼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에 들어간 절인 과일과 버터의 풍미가 깊숙이 베어들어 빵이 더 맛있어지는 것도 슈톨렌의 매력이다. 크리스마스에 먹는 빵이라는 것 때문에 연말 파티에서도 여러 모로 활용이 높다. 슈톨렌의 달콤한 맛은 진하게 내린 커피나 홍차의 쓴맛을 중화시켜준다. 럼에 절여 발효된 건과일과 견과류의 묵직한 풍미 때문에 뱅쇼(와인을 따스하게 끓인)·위스키를 비롯해 다양한 와인들과도 잘 어울린다.

『작은 빵집이 맛있다』의 저자 김혜준씨는 “슈톨렌을 먹을 땐 얇게 잘라 먹어야 한다”며 “버터와 과일을 듬뿍 넣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풍부하고 진해지기 때문에 두껍게 먹으면 여러 가지 맛이 뭉쳐 무슨 맛인지 모른다”고 조언했다. 슈톨렌은 가운데 부분부터 썰어먹고 남은 양쪽을 맞붙여서 밀봉 보관하면 빵이 덜 말라 처음의 식감을 오래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파네토네·판도르·구겔호프도 인기

파네토네·판도르·구겔호프 등 유럽의 다른 크리스마스 빵도 꾸준히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파네토네’는 이탈리아 밀라노 지역의 크리스마스 빵으로 10~15㎝ 높이의 돔 형태로 생겼다. 버터·달걀을 가득 넣은 반죽에 건과일과 견과류 등을 넣어 굽는다. 발효빵 특유의 깊은 풍미 때문에 와인과 특히 잘 어울린다. 파네토네종(種)이라고 불리는 천연 효모를 사용해 장기간 숙성시켜 만들기 때문에 슈톨렌처럼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쫀득한 식감과 단 맛 때문에 국내에도 매니어층이 꽤 있다.

발효종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는데 이탈리아 정부가 파네토네종의 외부 유출을 막아서 국내에선 제 맛을 내기 어렵다. JW메리어트 서울 동대문스퀘어가 매년 지하1층 서울베이킹컴퍼니에서 이탈리아 브랜드 로이손의 파네토네를 직수입해와 판매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엔 국내 유명 빵집들도 이탈리아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노력중이다. 리치몬드과자점은 올해 이탈리아 사람들이 효모를 키우는 방법으로 직접 키운 효모종을 사용하고 달걀노른자를 듬뿍 넣어서 파네토네 특유의 풍미와 노란색을 살릴 계획이다.

‘판도르’는 이탈리아 베로나 지역의 크리스마스 빵이다. 8각형 별 모양의 빵 위에 눈을 뿌린 듯 슈거 파우더를 잔뜩 뿌려 먹는다. 꿀·설탕·달걀·버터·우유를 가득 넣어 노란색을 띄기 때문에 ‘황금의 빵’으로도 불린다. 왕관 모양의 ‘구겔호프’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크리스마스 빵이다. 아몬드와 건포도 등을 브리오슈 반죽에 넣어 모자 모양으로 굽고, 그 위를 초콜릿과 크림 등으로 장식한다.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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