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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발음 우선한 부분보완|한글 맞춤법·표준어 개정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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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은 한조항만 변화가 와도 그 파장이 크고 깊다. 24일 국어연구소 (소장 김형규) 가 발표한 한글맞춤법및 표준어규정 개정시안도 이런 이유에서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종시안의 성격을 가진 이 개정안은 앞으로 4∼5월 4차례의 검토위원회(소공청회)를 거쳐 8월까지 문교부에 제출되며 문교부는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확정한다. 검토위원회는 학계·교육계·언론계·출판계 대표들로 구성된다.
◇개정작업=현행 한글맞춤법은 l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48년 정부수립후 공인 표기법으로 채택된 이래 몇차례의 부분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현행 표준어 역시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 통일안」총론에서 밝힌 기본원칙과 36년 사정·공표된 「조선어표준말모음」에 근거를 두고있다.
이 맞춤법과 표준말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게 됨에 따라 문교부 국어심의회는 70년 국어학계의 전문가로 국어조사연구회를 구성, 79년 처음으로 맞춤법 개정안과 표준어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미비점이 드러나 학술원이 개정안에 대한 재검토를 추진, 84년말 또다른 개정안을 마련했고 다시 85년 2월 국어연구소에 이사업이 승계됨으로써 장장 17년만에 최종적인 개정시안을 보게 된것이다.
국어연구소는 지난해 7월 주요 쟁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 전국 4백97개 중학교, 1천6백56개 고교, 1백90명의 국어학자, 69명의 언론인에게 의견을 물어 최종안 작성에 참고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 작성엔 맞춤법 분야에서 이기문 (서울대·87년1월까지) 김형규 (국어연구소장) 김민수 (고려대) 강신항 (성대) 이승욱 (서강대) 이용주 (서울대) 유목상 (중앙대)교수가, 표준어분야엔 이숭영 (백제문화개발연구원장) 김형규 (국어연구소장) 남광우 (인하대) 이응백 (서울대) 이익섭 (서울대) 박갑수 (서울대) 이병근 (서울대) 교수가 각각 참여했다.
◇개정의 주안점=한글맞춤법은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어원이나 어법에 집착하기보다 실제 발음을 우선함으로써 국어현실을 반영한 점이 주목된다. 이는 동음이의어의 양산등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표준어 규정에선 표준어 대상기준을 종전의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 대신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서울말」을 채택, 표준어가 「교양인의 언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대폭 개정이라기보다 전에 규정이 없거나 있더라도 미비해 표기에 혼란을 가져온 부분, 규정은 있더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부분을 손질한 「보완」의 성격이 강한 작업이었다.
◇주요정정=당장 큰 영향을 미칠 부분은 띄어쓰기 쪽이다. 현행 맞춤법에 눈이 익은 사람들이나 대부분의 출판물에 상당기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것이다. 개정안은 띄어쓰기에서 일반인이 단어로 인식하기 어려운 말을 붙여쓰기로 했다.
즉 「있을따름」 「바라는대로」처럼 조사가 붙지 않은 의존명사는 앞말에 붙여쓰고 「밝아온다」「깨뜨려버렸다」처럼 「-아·-어·-여」 뒤의 보조용언은 앞말에 붙여쓰며 성과 이름, 전문용어는 붙여쓰도록 돼 있다(채영신·대륙성기후). 또 수는 만단위로 띄어쓴다.
「넓적하다」「거북ㅎ지」를 실제발음대로 「넙적하다」「거북치」로 적은 것도 얼마간 낯설것이며 「ㄱ·ㄷ·ㅅ」의 명칭을 현행대로 「기역·디귿·시옷」으로 할것이냐 「기윽·디읃·시읏」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 「어서 오시오」로 할것이냐 「어서오시요」로 할것이냐의 문제등도 쟁점으로 남아있다.
한자어나 순우리말의 「몌·켸·폐·혜」를 「메·케·페·헤」로 적도록 함으로 써「은혜」가 「은헤」로 「폐단」이 「페단」으로 표기되는 것도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
◇학계반응=대부분의 학자들은 개정에 따른 혼란을 우려, 소폭개정을 바라고있다.
이기문교수 (서울대) 는 『될수있는한 안 고치는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토록 장기간 모여앉아 조문까지 만들어가며 맞춤법을 고치는 작업이 과연 필요한가』고 반문하고,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최소한으로 고쳐진 셈』이라고 말했다.
남기심교수 (연세대) 는 『이제 우리 맞춤법도 전통을 확립한 단계』라며 『불합리한 점, 틀리기 쉬운 부분에 한해 소폭으로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완진교수 (서울대) 는 『사전의 자모순서를 정한 점, 사이시옷 규정등은 국어 현실을 반영, 잘된 점이지만 그외로는 그대로 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웅씨 (한글학회 이사장) 는 『맞춤법은 고치지 말았으면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응백교수 (서울대) 는 『이번 개정안은 소폭이어서 혼란의 염려가 없다』면서 『소수반대의견에 집착하다보면 언어사용상의 혼란을 영영 시정할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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