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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가장자리 앉게 해달라” 국회에 쏟아진 민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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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일로 예정된 대기업 총수 국정조사를 앞두고 국회 행정실에는 기업 대관업무 담당 임원들의 민원이 쇄도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총수가 가급적 전체 증인석 중 가장자리 쪽에 앉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한 대기업 홍보 임원은 “중앙에 앉을수록 카메라 노출 시간이 길어지고, 총수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생중계돼 부담이 크다”고 털어놨다. 총수 9명이 출석하는 전대미문의 국정조사를 앞두고 기업들이 얼마나 예민해져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업 “가운데는 카메라 노출 많아”
휴일 자정까지 집무실 불 켜져있어
‘대답 짧게, 논란 땐 사과’ 매뉴얼도

기업들은 답안 준비에도 총력을 기울여왔다. 삼성의 경우 휴일이었던 지난 4일 자정이 다 된 시간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집무실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방 안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법무·대관·홍보 임원 등 10여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들은 예상 질문, 답변, 그 답변에 대한 추가 질문과 답안을 다듬는 데 이날 하루만 10시간 이상 공을 들였다. 지난 2일엔 이 부회장이 임원들 앞에서 직접 질문을 받고 답변하는 리허설도 진행했다. 방송기자 출신의 홍보 임원들이 발음부터 표정 관리, 시선 처리까지 조언했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출석하는 SK그룹도 대관팀과 법무팀이 TF를 꾸려 출석에 대비해왔다. SK 관계자는 “CJ헬로비전과의 인수합병(M&A)도 성사되지 않았고 면세점도 탈락해 문제가 될 만한 이슈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K그룹 TF팀은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한 경영 전반에 관한 현황도 꼼꼼히 요약해 보고했다. 생방송에서 그룹 현안에 관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총수가 그것도 모르냐”는 구설에 오를 수 있어서다. 총수가 고령인 현대·기아차는 자리 배치에 각별히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구 회장은 79세로 출석 회장 중 최고령이고 2009년 초 심장질환으로 개심 수술도 받았다. CJ그룹도 77세인 손경식 회장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국정조사 일정을 모두 소화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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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업 중에는 개별 사안에 대한 답변 외에 ‘대답은 가급적 짧게’ ‘논란이 벌어지면 일단 사과한다’ 등 청문회 답변 요령을 담은 매뉴얼을 작성한 곳도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법이 보장한 최소 인원만 동행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불미스러운 일로 출석하는 총수들이 과도한 의전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낼 경우 여론이 악화할 수 있어서다.

박태희·전영선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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