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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지 않는 그림은 그림자일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그림이란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볼일이다. 자기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대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평가의 글이란 것 역시 어떤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글들이란 「나」와는 다른 관점이란 측면에서 참조사항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더욱이 미술품들에 있어서 「느낌」의 세계란 조목조목 언어로 정확하게 형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그러한 느낌이란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지닐 수 있기에 정작 자기 느낌의 세계를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도 감동으로 연결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스쳐지나가는 나의 그림자에 지나지게 된다.
우리는 감동을 통해 삶에 있어 새로운 기분을 맛보게 되며, 자신에게 익숙해온 삶의 방식을 반성해보게 되고, 나아가 예측 불가능한 여러 현실에 대한 조망을 넓혀가게 된다. 감동 없는 미술품을 앞에 놓고 머리를 조아려가며 퍼즐게임 하듯 무엇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필자의 눈엔 그저 허망한 것으로 비쳐진다. 예술은 철학이 아닌 것이다.
토요일 오후, 전시관람 리포트를 써내기 위한 여고생들로 듬성듬성한 전시장을 돌아보며 필자는 얼마 전 미술 숙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던 조카의 낭패스런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무얼 그려야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주제에 해당하는 「무엇」이 오늘날 대부분의 미술품에서 미세한 감각의 파편이나 생각의 놀이로 바뀌게 된 것도 결코 조카의 고민과 무연치 않을 것이다.
『낙서 같아』『색깔이 보드랍고 예쁘잖아?』『내부 수리중인줄 알았어』등등 여고생들의 속삭임 전시평이 단지 그네들의 무지의 소치로 돌려질 수 있는 것일까? 미를 위해 연출되는 작위적인 포즈, 색채와 추상적 형태가 이루어내는 심미적 쾌감에의 몰두, 새로운 것에의 정열적인 실험, 이러한 것들이 과연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미술품에서 감동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리석은 일일까?
그런 중에도 「그림마당민」상설전시장에서는 학생들의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그림은 도대체 우리가 왜 이래야 하는가를 생각케 해줘요. 그리고 뭔가 가슴이 찡해지면서 속상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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