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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댄서의 컬래버레이션? 사람과 사람의 컬래버레이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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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14면

올해 ‘대세’로 떠오른 영화배우 한예리(32)가 숨겨둔 춤 솜씨를 공개한다. 서울시무용단의 간판 스타 박수정(32)과 함께 창작춤 ‘지나간 여인에게’를 선보이는 것. 배우·영화·염색과 한국무용의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는 서울시무용단의 옴니버스 프로젝트 무대 ‘더 토핑’(12월 8~9일 세종M씨어터)에서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한예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졸업 후 배우로 데뷔해 주로 독립영화에서 활동해 왔다. 그러다 2012년 ‘코리아’로 처음 상업영화에 출연해 리얼한 북한사투리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올해 ‘최악의 하루’로 지난달 25일 열린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오르고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청춘시대’에 출연하는 등 블루칩 여배우로 우뚝 섰다. 배우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그를 다시 본격 무용공연으로 끌어온 건 ‘절친’인 박수정이다. 국립국악고등학교 시절부터 한예종까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는 두 친구가 8년 만에 함께 서는 무대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무용을 전공했지만 그 길을 포기한 배우가 무용가인 친구 공연에 살짝 얼굴을 내미는 홍보전략 아닐까 싶었던 추측은 터무니없었다. 한예리는 배우 이전에 댄서였다. 촬영을 위해 잠시 춤을 출 때도 한국무용에 예상되는 뻔한 동작들은 볼 수 없었다. 새롭게 안무한 독특한 동작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맞추는 두 사람 사이엔 키 차이 말고는 어떤 격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 많이 바쁜 와중에 어떻게 무용으로 돌아왔나요.


한: 영화를 하면서도 무용을 꾸준히 계속했어요. 개인 무용단이나 작은 창작 공연 위주로 하다가 이번에 수정이가 속한 큰 단체에서 하다 보니 홍보가 돼서 그런거죠. 공연은 2년 만이긴 하네요. 작년에 전혀 못해서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박: 제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거죠. 사실 너무 바쁜 친구니까 스케줄 문제가 조심스러웠어요. 다행히 올해 바쁜 일정이 일단락되고 좀 여유로운 시기가 온 것 같더군요. 제가 또 못 쉬게 하는 거죠.(웃음)


무용은 하루라도 쉬면 몸이 굳는다고들 하잖아요.


박: 예리는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전혀 부족함이 없어요. 오히려 계속 추고 있는 우리가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어요.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걸 너무 춤 식으로 푸는 거죠. 예리는 그런 경계를 알고 있고, 안무자의 요구를 정확히 인지해서 본인의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어요.


한: 이번 공연은 시간적으로 빠듯했기 때문에…다음에 또 불러주면 잘하려고 해요(웃음). 오랜만의 작업을 친구와 함께해서 더 좋아요. 영화든 춤이든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한데, 저와 함께 성장해온 친구가 좀 더 자신을 알려야 하는 시기에 제가 도움 될 수 있어서 다행이죠.


두 사람이 함께하는 무대 ‘지나간 여인에게’는 박수정이 여인의 인생을 테마로 직접 안무를 짰다.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하지만 한예리의 연기적 표현과 스트릿 댄스의 움직임을 차용하는 등 장르를 초월하고 정형화된 틀을 깨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새롭고 실험적인’ 무대는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춤 이외의 시각적 자극을 덜어내고 다시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춤 자체로 돌아가는 ‘사람과 사람 간의 컬래버레이션’이란 것이다.


스트릿 댄서 최종인에게 트레이닝을 받는다구요.


박: 한국에서 추는 춤이면 한국무용이 될 수 있다 생각해서 장르에 국한되지 않으려는 게 첫 번째 생각이에요. 우리만 할 수 있는 정서와 흥이 깔려있다는 전제하에 다채로운 움직임을 끌어들이는 거죠. 기존에 보지 못한 움직임을 위해 스트릿 댄서에게 동작적 조언을 받아요. 어차피 근본적 움직임과 호흡법은 다르지만, 팝핀처럼 끊어지거나 락킹의 굴리는 느낌 같은 스트릿의 소스를 받고 그 질감을 무용화시키는 거죠.


한: 늘 쓰는 근육 외에 다른 근육을 쓰는 게 재밌어요. 엉덩이 빼는 건 좀 힘들긴 하지만(웃음).


박: 우린 스탠더드함이 몸에 배어 있으니까 관절을 빼서 쓰는 게 불편해요. 안 쓰던 근육을 쓰려니 다들 근육통을 호소하죠. 근데 오히려 그게 맞는 거 같아요. 다른 감각을 만들고 싶으니까요. 일부러 예쁘게가 아니라 더 그로테스크하게, 움직임도 더 확장시키려고 해요. 누군가 장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겠지만, 그 이전에 몸의 이야기로 공감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자의 인생을 테마로 삼기엔 아직 어리지 않나요.


박: 30대가 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10대에는 학업과 춤만 생각하고, 20대에는 열정과 패기로 달렸다면, 30대가 되고 나니 자신도 돌아보고 결혼할 시기도 되고, 주변에서 부고도 듣게 되고요.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내가 여자로서 잘 살아가고 있나,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았어요. 나는 누군가의 딸이고 친구지만 앞으로 누군가의 아내, 엄마, 할머니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한: 30대란 나이는 뭔가 중간에 끼여 있지만 여성성 만큼은 만개하는 나이인 것 같아요. 여성의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춤에 집중하는 거죠. 어떤 테마로 한정짓기 보다는 더 열어놓고 관객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무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60세까지 연기·무용 같이 하고파”]
둘은 말 그대로 ‘절친’이었다. 8년 전 박수정의 첫 안무작 공연 이래 함께 무대에 서는 건 처음이지만, 그간 서로의 모든 작품을 다 보면서 아낌없는 응원과 빈틈없는 모니터링을 주고받아 왔다고. 대학을 갓 졸업한 풋풋한 시절에서 훌쩍 세월을 건너뛰어 30대 여인으로 깊어진 시기에 다시 함께하게 된 것이 뜻깊고 든든하다고 했다.


“저희가 고등학교 때부터 삼총사였어요. 지금 한 명은 결혼해서 잠정휴업 중이긴 한데 교육쪽으로 가고 있구요. 같은 길을 걷지만 서로 목표점이 다른 단짝 친구들이라 경쟁심은 없었어요. 대학 갈 때도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다 같이 붙는 걸 목표로 하는 사이였죠. 서로 너무 많은 걸 알아 탈이죠. 처음 사귄 남자친구부터 시작해서 신체 어디에 점이 있다는 둥…(웃음).”(박)


“셋이 서로 하는 얘기도 그렇고 성격도 전혀 달라요. 그래서 서로 배울 점이 있는 것 같구요. 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조언해주고,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우쳐주는 휴식 같고 위로 같은 친구들이죠.”(한)


지금은 무용수로서 박수정이 큰 활약을 하고 있지만, 학창시절엔 한예리가 훨씬 촉망받는 기대주였다. 고교시절부터 ‘톱3’를 놓치지 않았던 한예리에 비해 박수정은 오히려 ‘실기 열등생’이었다고 고백했다. 예술을 하는데 경쟁구도를 만드는 교육시스템이 싫고, 그 안에서 시기하고 질투해야 하는 게 싫었단다. 오히려 대학 입학 후에 춤에 대한 확신이 생겨 곁눈질없이 계획대로 자기 길을 걷고 있다. 반면 ‘무용천재’ 한예리가 외도를 시작한 건 2005년 단편영화 ‘사과’에 우연찮게 출연하면서부터. 이 영화에도 두 사람이 함께 나왔지만 인생은 그때부터 엇갈리게 됐다.


“한예종 영상원에서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는데, 살풀이 댄서가 필요하다고 전통예술원 조교에게 댄서 2명 추천을 부탁한 거죠. 이후에 저는 영상원 친구들과 친해져서 독립영화 출연을 계속했는데, 무용도 계속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서른 살 까지만 하려고 했어요. 만일 상업영화를 하려면 연기에 올인해야 할 테니 20대에 독립영화만 하려고 했던 거죠. 다행히 지금 소속사에서 무용도 병행할 수 있게 도와줘서 서른이 넘었는데도 계속 연기를 하고 있네요. 60살이 되면요? 욕심부리는 건 아니지만 그때까지도 둘 다 하고 싶네요. 적어도 무용은 자리 잡은 친구들이 많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한)


“그건 내가 확실히 보장할께(웃음). 저는 제가 하는 것에 대한 확고함이 있었기 때문에 배우는 생각도 안 해 봤어요. 이미 무용가로서 세워놓은 계획이 있는 단계였으니까요. 영화 출연은 그저 예리와 함께 재밌었던 소소한 추억거리 정도의 의미죠.”(박)


배우가 된 친구, 내 꿈이었던 무용수로 성공한 친구라는 서로의 입장이 부러운 적은 없었나요.


박: 예리 영화를 볼 때면 늘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요. 성격을 너무 잘 아니까 한 컷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배우란 단지 보여지는 게 화려한 거지, 오히려 조심스러운 직업이잖아요. 저도 나름 화려하게 잘 살고 있구요(웃음).


한: 노력한 만큼 주어지는 것 같아요. 이제는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단계고, 서로 힘 실어주면서 더 연대해야지 각자의 영역도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요.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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