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것은주고 받을 것은 받았다|한미통상 회담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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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21일 이틀간의 제12차 한미통상장관 회담은 한국측에서 볼때 성과는 반도체·자동차·공작기계등 새로 미국에 진출하기 시작한 분야의 시장확보, 반도체·공작기계·슈퍼컴퓨터·항공기등 첨단분야에서의 산업협력 체제의 구축으로 요약될수 있다.
미국측은 반도체·자동차등의 대미진츨에 부당한 수입규제를 하지 말아달라는 한국측 요구에 대해 덤핑등 불공정거래행위를 하지 않는한 어떠한 규제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또 미국의 자본및 설계기술과 한국의 생산능력을 결합하는 경우 일본에 대항할수 있다는 인식아래 첨단분야에서 산업협력을 강화, 제3국에 공동진출 한다는데도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합의에 따라 구체적으로 미국의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와 우리의 중소기업진흥공단이 파트너가 되어 앞으로 추진할 협력사업을 구체화 시킨다는데까지 얘기가 진전됐다.
한편 미국에 대해 우리 정부는 컴퓨터및 주변기기중 애널로그 컴퓨터·하이브리드 컴퓨터·천공기등 3개품목의 개방시기를 앞당기고 공공기관컴퓨터 구매시의 국산화 의무비율을 완화하고 자동차부품의 KS표시허가제품 사용의무를 현재 11개 부품에 요구되는 것을 2개부품에만 적용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회담이 피차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선에서 비교적 좋은 분위기에서 끝난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정부가 회담을 앞두고 최대한 성의를 보인것을 미국측이 인정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정부는 금년들어 24개 품목의 시장조기개방, 83개품목의 관세인하조치를 취한외에 미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수입담배 판매제도를 개선, 수입판매점 개설을 신고제로 바꾸며 소득신고율에 차등을 두어 외국산 담배의 경우 종래 2.5%를 1.5%로 낮추고 포도주 시장도 개방키로했다.
특히 「볼드리지」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발표한 내수확대정책과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기 위한 외화대부제도의 실시등은 미국의 대한인식을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측은 한국정부가 취한 이같은 일련의 조치를 높이 평가하고 『일본과는 달리 행동을 보여준다』 『제2의 일본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미의회나 행정부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데 한국에 대한 인식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회담에 참석했던 한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사태를 낙관만 하기에는 한미양국간에 놓여있는 문제가 너무 많다.
이번 회담에 참석하기 전에 미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볼드리지」 장관은 한미간의 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해서는 원화절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그같은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바 있다.
이번 방한중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환율문제는 앞으로 계속 타오를 불씨임에 틀림없다.
이번 회담석상에서나 무협오찬회 연설등을 통해 밝혀진 미국측의 주문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통상장관회담에서 「볼드리지」 장관은 해묵은 쇠고기 수입개방·농산물 개방·전신기기, 자동차·담배등의 관세인하, 컴퓨터·전신장비·의료장비등의 국산화비율 의무완화, 광고시장개방·창고업진출 허용, 컴퓨터(중형)·자동차의 조기개방등을 들고 나온 것은 물론이고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보령제3, 제4호기 화력발전소건설참여, 고흥∼제주간 해저케이블 설치참여, 알래스카산 석탄·LNG수입등을 요구해 왔다.
보령화력발전소건설은 7천2백15억원(8억달러) 규모, 해저케이블은 7백20억원 (2천5백만달러) 규모로 모두 국제입찰에 부쳐진 것이다.
우리정부는 경쟁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확실한 언질은 피했으나 앞으로 미국의 압력이 가중될것이 우려된다.
쇠고기수입이나 농산물시장개방·광고시장개방등도 국내사정을 들어 단시일내에 개방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계속 문제로 남을 사안들이다.
이번 회담에서 또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미국측의 우리의 국산화 시책이나 수입절차·내국세문제등을 비관세 장벽으로 들어 이의 완화, 철폐를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수입개방을 하면서 불필요한 규제나 손가락질 받을 정도의 번잡한 절차를 만들어 무역마찰을 자초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측은 초컬릿 한가지 들여오는데 일본·대만은 하루만에 끝나는 절차를 25일씩 끈다고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컬릿수입액은 연간 고작 80만달러다. 일의 대소, 완급을 가릴줄 아는것이 무역마찰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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