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족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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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바이블 (성서) 에는 극적인 장면들이 많다. 최후의 만찬을 들고난 예수는 겉옷을 벗더니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나섰다.
그는 대야에 물을 붓고는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었다.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을때 그는 끝내 마다했다. 예수도 양보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끝까지 고집하면 인연을 끊겠다고까지 말했다. 「베드로」는 결국 예수에게 자신의 발을 내주었다.
발씻김 (세족) 은 원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예절이었다. 손님이 오면 먼저 대야에 발 씻을 물을 내놓는다. 손님은 식탁에 비스듬히 앉아 발을 뻗고 있으면 그 집의 하인이나 집주인의 아내가 그것을 씻어 주었다.
가톨릭교회는 서기694년부터 발씻김을 교회 의식으로 채택했다. 부활주일 1주일전부터 시작되는 성주간의 목요일에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12사람을 불러 이들의 발을 씻어 준다.
물론 물만 묻히고 수건으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는 상징적인 의식이지만,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엊그제 외신사진에도 교황이 한 신부의 발을 씻어주고 발가락에 입을맞추는 장면이 있었다. 국내에선 김수환추기경이 서울 상계동 세입자철거민 대표의 발을 씻어 주었다.
비록 이것은 한 종파의 종교의식이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새겨볼만하다.
한마디로 겸손과 봉사의 정신이다. 성서엔 이런 얘기가 있다. 예수가 어떤 사람들을 축복하면서 『굶주렸을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때 영접했고, 헐벗었을때 입을것을 주었고, 병들었을때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때 찾아준것』을 감사했다.
그러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실제로 예수에게 그런 일을 해준적이 없었다. 이들이 어리둥절하자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것이 곧 내게 한것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인들에 대한 경구도 된다.
예수는 이런 말도 했다.『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발씻김의 정신이다. 이런정신은 크리스천만의 실천덕목일수 없다. 더도 말고 정치인들이 그런 정신의 1천분의 1이라도 실천한다면 세상은 한결 편안하고 조용할 것이다. 국민의 발을 씻어주는 정치지도자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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