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도 둔해졌고 「겁」도 없어졌다|숨가쁜 증시 열풍 어디까지 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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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올 들어 불과 석 달 사이에 주식 값이 평균 50% 오른 셈이다. 하루 증시 거래 대금만 1천억원선. 사람들이 모였다하면 증권 얘기이고 증권사 객장은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요즘의 증시 열풍은 과연 정상인가. 우리 경제의 한 모퉁이가 오버 히트 (과열) 되는 것은 아닌가. 정부 당국이나 투자자들은 상황을 한번 심각하게 점검해 볼 때인 것 같다.<편집자 주>
주가는 올 들어 그야말로 숨가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연초부터 폭발 장세를 뿜어내 종합 주가 지수가 지난 1월21일 3백선을 넘어선 이래 4백 고지에 육박하기까지는 불과 두 달 남짓. 그나마 지난 6일 3백50을 넘어선 뒤로는 23일 3백70, 26일 3백90을 기록하는 등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왔다.
80년 1월4일 주가수준을 1백으로하여 지난해 4월1일 6년여만에 종합 주가지수 2백을 넘어선 것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속도이다.
이제는 올라도 너무 오른다는 우려조차 만성화하여 「주가는 오르는 것」이라고 접어둘 만큼 수직 상승의 연속이다.
27일 현재 3백94·38로 연초 (2백64·82) 보다 1백30포인트, 49%가 올라있는 상태.
유레드문 활황으로 평가됐던 지난해 연간 상승률 (69%)을 올 들어서는 석 달새에 달성 (?)것이다.
거래량과 대금도 그렇다. 지난 12월 평균 2천5백만주이던 하루 거래량이 1월 들어서는 3천만주, 2월 4천2백만주, 최근 1주일에는 8천6백만주로 폭발 일로다. 하루 주식거내가 급기야 1억주·1천억원대에 올라선 것이다.
「증시 열풍 이대로 괜찮은가」하는 우려와 함께 「주가 행진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는 의문이 교차되는 형국이다.
올 들어 증시 활황이 이처럼 거센 열기로 치닫고 있는데 대해 증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돈이 몰려들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는다.
3저 호황을 탄 기업 수익 호전에 부동산 침체 등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풍부한 시중 자금, 자본 자유화의 기대감 등으로 부추겨져 지난해의 활항세가 그대로 이어졌다. 거기다가 연초 정지·고려 개발 사건으로 사채 시장의 자금이 증시로 몰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얘기다.
그뿐인가. 수출 호조 등으로 계속 풀리고 있는 돈줄, 원화 절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해외자금 유입 등이 가세해 증시의 자금 수위는 보다 급하게 높아져 가는 추세다.
고객들이 주식을 사달라고 증권사에 맡겨놓은 돈만도 연초보다 3천7백여억원이 늘어난 무려 4천8백50억원 (26일 현재) . 올들어 27일까지 증시에서 거래된 돈을 따지면 3조9천9백75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2조3천2백17억원보다 72·2%가 늘어나 있는 상태다.
시중의 돈이란 돈은 온통 주식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점에서 요즘의 주가 폭등을 「돈들의 패권 다툼」이니 또는「머니 게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경제 여건이 좋아지고, 기업의 경영 실적이 나아지며, 자본 자유화가 눈앞에 닥친 마당에 주가가 뛰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을 하고있다.
증시 활황의 시동이 기업의 해외 전환 사채 (CB) 발행을 계기로 3저 얘기가 나올 무렵인 지난 85년 하반기부터 시작됐다는 것도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미국·일본·유럽의 증권 시장도 계속 신기록을 갱신해가며 활황속에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긍정론자들의 입장을 강화해준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종합 주가 지수 1백40선이던 85년 말과 비교하면 주가는 그 사이 평균 2·5배 올라있는 수준이다. 워낙 오르다보니「감」도 둔해졌지만 「겁」도 없어졌다.
1년 남짓 사이 주가가 오르는 것만을 보아온 투자자들은 「3일 천장 3일 바닥」이라는 과거의 경험에는 좀처럼 귀를 기울이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의 투자 양상은 한마디로「사재기」라는 게 증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내릴 때를 의식해 사도 골라서 사고, 파는 시점에 대해서 신경을 썼던 종전과는 달리 일단 사기만 하면 돈이 된다는 식으로 무작정 물량 확보에 승부를 걸고있다는 것.
증권사의 투자 고문 담당자들은 요즘처럼 투자 조언하기가 힘들기도 처음이라며 고개를 흔든다.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고 종래 경험에 비춰 조언했다가는 망신(?) 당하기가 일쑤라는 것.
그래서 요즘 주가를 두고 「대리주가」라는 말도 생겨났다. 경험 있는 전문가들보다는 들어온지 얼마 안된 창구의 신출내기들이 더 잘 들어맞게 주가를 짚고있다는 것. 그만큼 요즘 양이 공격적이고 비정상적인 면이 있음을 빗댄 말이기도 하다.
4백선을 돌파한 뒤의 향후 주가 전망에 대해 증권 전문가들은 되도록 「노코멘트」의 입장이다. 감히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한다.
다만 두 가지의, 모두 가능할 수도 있는 엇갈린 전망을 시사할 뿐이다.
「경고」를 발하는 쪽에서는 80년대 들어 상투가 돼온 건설주까지 일제히 폭등한데 주목, 말기적 현상으로 진단하며 조정 급락을 내다보고있는 반면 「계속 고(GO)」를 예견하는 측은 픙부한 유동성에 뒷받침 되고 있는 사실을 강조,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4백 고원을 증권 시대의 개막으로 진단하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의 주가 수준과 비교하거나 우리 나라 경제 전망 및 성장 추세로 보아 주가는 앞으로도 더 올라갈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다수 의견이다. 연내 종합 주가 지수가 4백50을 넘어 5백까지도 갈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기적으로 보면 늘 등락이 교차한다. 그 간격과 기간은 누구도 장담 못한다. 따라서 단기 차익만을 바라는 투기 목적의 주식 투자는 그만큼 위험 부담이 있는 것이다.
어쨌든 어느 쪽도 앞으로는 차익「먹기」보다는 「안전」위주의 정공법이어야 한다는 조언을 한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떨어질 때가 있는 것은 정한 이치임을 깊이 새겨야 할 시점이다.

<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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