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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품…왜 가격차 심한가(5)|가구|값 비싸게 불러 할인 판매…불신 자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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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결혼 시즌·이사철이 겹치는 봄이 되면서 가구점을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가구는 주택에 다음가는 제2의 공간으로 일컬어진다. 장롱·식탁·책상·의자·소퍼 등 일상 생활에서 가구와 연결되지 않는 것은 없다.
이 때문에 결혼 때는 가구를 장만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돼 있고 전체 가구 수요의 55%를 혼례용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가구는 단순한 생활 필수품을 넘어 실내 장식용의 의미를 더해 가고 있으며 고급화·패션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제품도 다양해지고 가격도 차이가 심해 전문 지식이 없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고르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나무 의자 하나를 사려해도 5천원 미만짜리부터 2O만원을 넘게 홋가하는 것이 있고 10자짜리 같은 크기의 장롱도 20만원 짜리에서 6백만원이 넘는 원목 수공예 제품까지 천차 만별이다.
더욱이 소비자들을 당혹케 하는 것은 비슷한 제품이 2배 이상 가격차가 있는 경우다.

<의자 , 5천∼20만원>
실제로 아현동의 A점포에서 27만원하는 무늬목 장롱이 같은 시장의 B점포에서는 60만원을 홋가하고 있다.
가구점측은 사용한 목재의 질과 공정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쉽게 판단이 가지 않는 얘기다.
「가구를 사려면 절반 정도 값을 후려쳐야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가구점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과 가구 거래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가구의 가격체계가 왜 이처럼 복잡하고 소비자들의 불신을 사고 있는지 우선 유통구조부터 알아보자.
대규모 가구 생산 업체의 경우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전국의 각 대리점으로 나가 소비자들을 맞게 된다.
이때의 유통 마진은 공장→대리점 단계와 대리점→소비자 단계에서 각각 15∼20%가 붙어 소비자 희망가격 (정가) 은 공장 출하가격의 30∼40%의 마진이 붙는 것이 보통이다.
현재 대규모 가구 업체로는 보루네오·리바트·삼익가구·라자 가구·선퍼니처·상일· 동서·우아미 등 8개사가 있는데 이들이 가구 시장 전체 물량의 45%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소업체 가구들은 논현동·아현동 굴레 방다리·신설동·을지로5가 등 서울 시내 주요 가구 시장에 1∼3개의 점포를 갖고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곧장 내놓거나 큰 메이커 대리점에 위탁하여 판매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대개 30%안팎의 마진이 붙는데 고급 자재를 사용해 수공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 가격이 비싼편이다.

<유통 과정은 3단계>
그리고 전국적으로 2천여개로 추정되는 군소 영세 업체들은 저급 가구를 주로 가내 공업형태로 생산해 변두리 주택가나 아현동·신설동·사당동 등의 일반 가구 시장에 20% 내외의 마진을 붙여 내놓는다.
저급품이건 고급품이건 유통과정은 생산자→대리점 (혹은 위탁판매)→소비자의 3단계를 거치는 단순 구조다.
그런데도 가구가 유통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불신을 사는 이유는 값을 비싸게 불러놓고 할인해주는 거래 관행 때문이다.
요즘 가구업계는 20%씩 할인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 관계자는 할인 기간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할인은 해주고 있다고 솔직이 털어놓고 있다.
가구 업자들이 스스로 소비자들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가구의 가격 차이가 심한 것이 모두 변태적인 거래관행 때문만은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가구업자들은 가구의 커다란 가격 차이를 역시 품질의 차이, 즉 자재와 디자인 및 공법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목재가구를 볼 때 필요 원목의 98%가 수입에 의존하며 나머지 2%는 서랍 등 내장재로 주로 쓰이는 국산 오동나무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가구 제품의 가격차는 수십 가지 수입 원목의 차이로부터 1차 발생한다. 고급 원목으로는 혹단·자단. 티크·월넛(호도나무) ·로즈목 (장미나무)등이 꼽히며 가장 대중적인 것으로 나왕을 비롯해 미송·베니어등을 들 수 있다.
각종 수입 원목은 종류와 수령에 따라 상당한 가격차를 보이는데 저급인 칠레송과 고급품종인 호란·월넛·로즈목 등은 ㎥당 무려 2만5천원 이상의 가격차가 있다.
흔히 원목 가구라 하여 비싼 값에 팔리고 있는데 이것도 각양각색이다. 본래 의미의 원목가구란 제품의 80∼90%를 원목을 사용한 것을 말하는데 시중 대부분의 원목가구들은 이보다 원폭 비율이 훨씬 낮아 심지어 원목 10%에 불과한 것도 있다고 가구 공업 협동 조합 연합회의 김대환 차장은 말한다.
원목 가구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선 가구 앞뒤 사방을 살펴 같은 무늬가 서로 연결돼 있는지를 보면 되고 두드릴 때 합판가구가 가벼운 금속성 소리를 내는데 비해 무겁고 둔탁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다.
원목 가구가 아닌 대부분의 가구들은 베니어판 2장 사이에 나왕 심재를 넣어 그 위에 0·2∼0·6"의 무늬목(원목을 얇게 썰어 만든 것) 을 붙여 만들어진다.
그리고 종이 바른 가구란 베니어판 위에 무늬 결을 인쇄한 특수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이다.

<원목 98%는 수입>
무늬목과 무늬결 종이는 제품 원가상 차지하는 비율이 1∼2%에 불과하지만 같은 재료로 만든 무늬목 가구는 종이 바른 가구에 비해 2배정도 비싸다.
또 가구는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가공비에서도 큰 차가 난다. 의자나 탁자의 경우 원목을 쓰는 것이 베니어판을 쓸 때보다 2∼3배정도 비싸고 장롱의 경우엔 10배에서 무려 30배까지의 가공비용 차가 발생하기도 한다.
가구의 가격차를 내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생산 형태를 들 수 있다.
대규모 업체들은 일괄 기계 공정을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1백% 넉다운 방식(조립이 가능하도록 분해하는 것)을 채택함으로써 원가를 줄일 수 있지만 소규모 업체의 수공예 가구는 숙련된 기능공에 의해 장시간에 걸쳐 제한된 수량만을 만들게 되므로 가격차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주문 생산 장롱의 경우 인간 문화재·전통 공예가 등이 만든 것은 몇 천만원을 홋가하기도 한다.
문제는 일반 소비자들이 믿고 안심하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거래 풍토의 확립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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