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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의 지평 넓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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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광복후 근45년만에 자기의 역사와 자기의 문화에 대한 확신을 가진 교과서를 처음 갖게 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25일 국사교육심의회가 확정 발표한 「국사교과서 개편방향 시안」을 보면서 우리도 이제 떳떳한 민족사교육의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는 희망의 증거를 찾게 되었다.
특히 이 시안은 지금까지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하면서 부정일변도로 일관해오던 고대사의 주요사실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어 획기적인 사관변화를 확인하고있다.
단군신화를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사실의 반영」으로 인정한다든가 고조선의 강역을 대동강 유역으로 좁게 한정해 보던 태도를 버리고 그 중심무대를 중국 동북부일대로 확장해본 것은 대단한 발전이다.
뿐더러 그간 중·고교의 국사교과서에서 건국시조와 건국연대없이 가르쳤던 삼국의 존재도 우리 고대사서인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긍정함으로써 회복하고, 그간 적대국처럼 방치해 두었던 발해를 우리민족사안에 편입시킨다는 진취적 시각은 실로 놀라운 발전이라 하겠다.
비단 고대사뿐만이 아니라 중·근세사에서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이론중 하나였던 당파성논에 근거했던 「당쟁」대신 「붕당」이란 용어를 써서 그것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균형있게 서술한다거나 근·현대사에서 그간 금기로 여겼던 김일성의 집권등 북한사의 실재를 인정하고 또 북한이 부인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대한민국이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등 사회발전과 현실의 인식에서 역사교육을 활성화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시안의 이와같은 방향은 좋은 국사교과서를 기대하고 있는 국민의 여망에 크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지난 4O여년간 올바른 국사교과서가 없었고, 특히 74년 개편이래 수백년의 역사가 증발해 버린 교과서로 뿌리없는 민족교육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큰 개선이 분명하다.
다만 이 시안을 놓고도 대학과재야 사학자들 사이에 또 적지않은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번의회의 졸속심의에 항의해서 심의위원을 사퇴한 경우까지 있기때문에 문제는 단순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국사교과서에는 몇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은 그것이 역사인 한 분명한 사실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날조가 있어서는 안되며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억지로 만들어질수도 없다.
그러나 국사는 일면으로 학문적연구성과를 충분히 반영해야 하지만 동시에 사관과 시각의 학문임을 인식해야 한다. 역사를 보는 눈과 태도는 역사기술을 좌우하는 것이다.
민족의 주체적 입장에서 역사를 인식해 가는 노력은 식민사관·약소민족사관을 탈피하는 첩경이다.
더우기 국사교과서는 민족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어야 하며 생명 없는 객관적·실증적기술은 무의미한 것이다.
새 국사교과서들이 주체적 역사의식에 입각한 건전한 민족사관을 정립하는데 기본방향이 두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런 방향에서 교과서가 개편되더라도 아직도 더 연구되고 토론될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인식해야겠다.
역사의 진실을 캐는 작업은 역사가의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좋은「국사교육」을 위한 방안들은 시급히 수용되어야한다.
국사를 국정의 틀에서 탈피해 「검인정」화해서 자유로운 교육의 폭을 넓힌다든가, 무미건조한 연대기의 나열을 지양하고 사회의 필요와 학생의 발달에 상응한 흥미있는 내용으로 자연스런 역사의식을 키우는 노력은 절실하다.
시안의 공개 논의과정에서 좋은 결실을 가져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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