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둥이는 호신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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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8일 상오 10시50분쯤 부산 지법 울산 지원 1호 법정.
부산 형제 복지원장 박인근 피고인 (59) 등 7명에 대한 첫 공판. 검사가 손목 굵기에 길이 1백20m 가량의 몽둥이를 내보였다.
『이 몽둥이를 알죠』
『그건 몽둥이가 아니라 막대기입니다』
『이 몽둥이로 도망가려다 잡힌 원생을 마구 팬 사실이 있죠』
『없습니다』
『그럼 왜 모든 목장 경비원들이 이 몽둥이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나요』
『호신용입니다』
피고인들은 검사 신문 내용을 모조리 부인해 버렸다.
이어 변호인측 반대 신문.
『박 피고인은 일부 비품 구입시 영수증을 안 받고 거래한 적이 있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장부를 맞추느라 가짜 영수증을 몇 장 만든 것이지요』
『…‥·‥』
『아니 다른 뜻이 아니라 단순히 회계 정리를 위해 몇 장을 만든 것뿐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변호인의 묘한 논리 전개에 일순 멈칫하던 박 피고인은 엉거주춤 영수증 위조 사실을 시인하고 말았다.
문제의 탈주 원생 피살 사건이 났던 울산의 반정 목장에 대해 『공기 좋고 편안한 잠자리가 있는 요양처가 아니냐』는 변호인 물음에 『맞습니다』라고 시원스레 답하는 박 피고인.
순간, 2개월전에 가본 20여평 2중 쇠창살의 마루방에 50∼70여명을 수용시켰던 반정 목장 숙소가 영상처럼 떠올랐다.
『뭐 요양처라고? 저희들이 한 번 갇혀 살아보라지』
공판 도중 시종 숨을 죽이고 있던 어느 40대 방청인이 법정 문을 나서며 내 뱉는 소리가 가슴에와 닿았다. <울산=김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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