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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의 먹구름|개도국 외채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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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세계최대의 외채국인 브라질이 지난달 외채이자의 지급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개발도상국의 외채문제가 다시 세계경제에 먹구름이 끼게 하고 있다.
브라질은 6백80억달러에 달하는 외국은행차관의 이자를 90일 유예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인데 뒤이어 외채상환 재조정회담을 앞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국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조하고 나선 것. 필리핀도 외채의 재조정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82년 멕시코의 외채상환 중단선언으로 외채위기가 표면화된 이후 개도국들의 외채상환 동결위협은 외채문제의 정치적 이슈화와 현실적인 문제로 제기되었다.
개도국들의 외채문제는 85년 이후 세계경제가 호전되면서 어느정도 개선의 기미를 보이는 듯 싶었었다. 그러나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주의의 강화와 1차 상품가격하락이 장기화되면서 개도국의 부채문제는 다시 수렁으로 빠져든 꼴이다.
이자지불유예를 선언한 브라질의 경우 외채는 1천73억달러로 1년에 갚아야할 외채이자만 1백20억달러에 이른다. 이자만 갚기 위해서라도 한달에 10억달러의 국제수지흑자가 필요한데 작년2∼9월에 월평균 9억∼10억달러까지 늘어났던 무역수지흑자가 10월부터 격감, 지난1월에는 1억2천만달러로 뚝 떨어졌다.
벌어들인 외화를 몽땅 털어 넣어도 이자조차 못갚는 상황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아르헨티나·멕시코 등 중남미 외채국들이 모두 비슷하다.
외채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총수출에 대한 외채이자 상환비율(ISR)이 대부분20∼40%에 이르고 있다.
중남미국가들이 이처럼 외채상환불능에 빠진데는 국제고금리와 1차 상품의 가격하락, 그리고 방만한 외환관리 등 여러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대부분의 외채국들이 빌어온 자금은 내수산업에 쓰고 코피 등 농산물·섬유 등 1차 상품으로 외채원리금을 갚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경제정책을 취해왔는데 70년대 후반들어 국제 원자재값의 대폭 하락으로 효과를 보지 못한채 외채누증만 불러왔다.
국제고금리로 외채상환부담은 늘고 그 위에 거액의 자본도피현상마저 가중됐다. 중남미19개국의 외채는 지난78년 1천5백억달러에서 85년에는 3천6백80억달러로 배이상 증가했다.
82년 개도국의 외채위기가 국제금융시장에 큰 파문을 던진 이후 개도국의 외채문제는 주로 채무재조정방식으로 위기를 넘겨오고는 했다. 미국을 비롯한 채권국 은행들이 IMF(국제통화기금)등 국제금융기구의 중개를 중심으로 상환을 연기하는 조치를 취했다. 82∼85년간 중남미국가들의 채무를 재조정해준 금액만도 1천6백60억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채무재조정의 반복과정에서 채무국들의 신인도는 계속 떨어져 국제금융시장에서 돈벌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최근 브라질 등 중남미국가들의 잇단 채무상환 동결선언 움직임도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할수 있다. 외채원리금을 갚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외국자금이 필요한데 그 길이 막히자 외채지급유예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개도국들이 집단적으로 외채상환기간의 연장 등을 주장함으로써 외채문제를 국제정치문제화 하려는 움직임은 최근 2∼3년간 부쩍 늘고있는 경향이다.
지난해11월엔 처음으로 36개 개도국들이 페루 리마에서 대규모의 외채국 회의를 개최, 외채문제의 책임은 채권·채무국쌍방에 있다면서 채무국들은 앞으로 상환능력 안에서만 외채를 갚아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시 말해 자국경제를 해치면서까지 빚만 갚을 수는 없으니 파격적인 저금리와 장기상환유예 등으로 외채상환조건을 전면 수정해달라는 요구를 들고 나왔다.
외채개도국들의 잇따른 외채이자 상환유예선언이 국제금융질서를 무너뜨려 금융공황으로까지 악화될 조짐은 아직 없어 보인다.
브라질은 이자지불유예선언과 함께 주요식품 가격안정을 위한 정부보조금 삭감 및 정부기관의 예산절약 등 경제긴축계획을 동시에 발표했다. 이는 IMF가 브라질에 외채상환 또는 신규투자재원용으로 40억달러의 신규차관을 제공하는데 따른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다는 것.
따라서 브라질측은 이자지불유예선언을 앞세워 다음달에 돌아올 국제채권단과의 채무조정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속셈이 더 강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베이커」미재무장관도 얼마전 의회에서 채무국들이 외채를 안갚겠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유보하자는 것이므로 채권은행단과 채무국이 조금씩 서로 양보하면 해결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증언, 외채위기의 심각성을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선진국들의 보호무역강화추세와 주요 외채국들의 주종수출상품인 원자재가격의 하락이 계속되는 한 개도국의 외채문제는 그게 개선될 전망은 없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88년쯤에는 보다 큰 외채위기가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단기적인 채무재조정 외에 외채문제해결을 위해 최근에는 외채를 채무국의 주식투자로 전환하는 방식도 나오고있지만 문제는 이런것들이 개도국 외채해결의 본원적 해결방법이 못된다는데 외채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장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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