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들어간 대안우파 사령관, 보수도 진보도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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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배넌(62). [로이터]

스티브 배넌(63)

미국이 스티브 배넌(63) 때문에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럽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배넌을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으로 지명한 후 곳곳에서 반대 요구가 거세다. 민주당 하원의원 169명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데 이어 이틀 후엔 전국 변호사 1만1000여명이 지명 반대 연판장을 돌렸다. 무슬림 인사들은 물론 유대인 단체인 반인종주의연맹(ADL)까지 배넌에 공직을 맡기지 말라고 성명을 냈다.

미국을 들끓게 만든 배넌은 이른바 ‘대안 우파(alt-right)’의 사령관격이다. 대안 우파는 주로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던 반세계화, 반이민, 반유대주의, 반이슬람, 반페미니즘, 백인 우월주의 움직임을 통틀어 지칭한다. 뉴욕시립대의 토머스 메인 교수는 “대안 우파는 불법 체류자 추방과 보호무역을 옹호하고 페미니즘ㆍ다원주의ㆍ세계화와 성소수자 옹호에 반대한다”고 규정했다. 보수 라디오 진행자 글렌 벡까지 “대안 우파는 정말 무섭다. 배넌이 이들에게 목소리와 힘을 줬다”고 우려했다.

그간 대안 우파는 변방의 ‘찌질이 문화’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배넌이 트럼프 캠프의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된 뒤 백악관에 입성하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바뀌고 있다. 대안 우파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게 배넌이 운영했던 인터넷 매체 브레이트바트다. 배넌 스스로 “브레이트바트는 대안 우파의 플랫폼”이라고 공언했다. 이 매체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무슬림의 성폭행 문화를 정당화한다” “산아 제한은 여성의 매력을 없앤다”는 보도를 냈다. 네오콘 보수인 빌 크리스톨을 향해선 “공화당의 훼방꾼이자, 변절자 유대인”이라고 비난했다. 배넌이 백악관에 들어가자 네오 나치 성향의 웹사이트 데일리스토머는 “백악관의 우리 사람”이라고 환호했다.

배넌은 지난 8월 할리우드리포트 인터뷰에서 “(핵심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ㆍ플로리다ㆍ오하이오ㆍ미시간에서 우리가 이긴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네 곳 모두 승리했다. 지난 15일 같은 매체를 만난 그는 “트럼프가 미시간 유세 때 세 시간 반을 늦어 새벽 1시에 연설을 시작했지만 3만5000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클린턴이 10배의 자금과 인력을 썼지만 나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 진영의 실세다. 대선 당일 배넌이 출구조사 결과를 긴급하게 논의했던 상대가 트럼프 당선인의 ‘눈과 귀’라는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였다. 할리우드리포트는 “(15일)인터뷰 당시 사무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는데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참을성 있게 (배넌과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배넌이 그리는 미국은 진보의 다원주의도, 보수의 세계 경찰도 아니다. 그는 15일 인터뷰에서 “나는 국수주의자다. 경제 국수주의자”라고 공언했다. “세계화주의자들은 미국 노동 계층의 내장을 빼먹고 아시아에 중산층을 만들어줬다”고 비난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 자신을 다스 베이더, 사탄으로 비판하는 데 대해선 “어두움은 좋은 것”이라며 “딕 체니도, 다스 베이더도, 사탄도 권력”이라고 받아 쳤다. 그러면서 “나는 튜더 왕조의 토머스 크롬웰”이라고 비유했다. 영국 튜더 왕조의 헨리8세가 로마 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해 1534년 수장령(首長令)을 내려 영국 국교회를 교황청에서 분리시켰는데 이때의 책사가 크롬웰이다.

배넌의 등장은 숨어 있던 인종주의가 목소리를 높이고 반세계화 국수주의가 트럼프 정부의 청사진에 반영되는 계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배넌은 반이슬람 강경파인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내정된 마이크 폼페오 하원의원, 자유무역 비판론자인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후보자와 함께 ‘트럼프의 신 미국’을 만드는 극우 라인의 막후 조정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배넌 비판자들은 그가 ‘트럼프의 라스푸틴’(제정 러시아를 몰락시킨 요승)이 될 것이라 우려한다”고 전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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