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세대’의 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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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호 34면

11월


영어 사전 ‘11월 같은’(Novemberish)이라는 단어는 Dreary나 Dismal, 즉 ‘음울한’ ‘울적한’ ‘황량한’의 동의어로 쓰이는 파생어 형용사다.


그 여자의 사전 일 년 열두 달 중 나름대로 독특함이 느껴지는 달. 그러나 그 독특함이란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추억도 없고 의미 없어 보이고 기다려지지 않고 어정쩡해보이는 달이라는 의미. 그러나 올해부터는 많은 기억과 의미와 자부심으로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달.


11월은 환영받지 못한 달이었다. 11월은 늘 기다려지지 않았다. 11월은 늘 허전하고 쓸쓸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한 달 내내 공휴일이 없는 희망 없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벌써 다음달이 한해의 마지막이니 올해도 헛되이 한 살만 더 먹는구나’ 괜히 마음이 불편해 지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가을을 보낼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데 겨울은 자꾸만 성큼 성큼 다가오는,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가을이기도 겨울이기도 한 어정쩡한 달. 끼인 달.


그러니까 11월은 ‘캐릭터’가 없었다. 1월은 시작하는 달, 2월은 가장 짧은 달, 3월은 봄이 시작되고 4월은 봄이 피어나고 5월은 계절이 여왕이 되고 어린이들이 주인공이 되고…10월의 단풍과 아름다움도, 12월의 들뜸과 흰 눈도 없는 달. 살림에는 관심이 없으니 김장 같은 건 애써 무시하고 그나마 어린 친구들이나 신나 하는 빼빼로데이 같은 것에도 시큰둥하기만 하던 달. 그러니 휙 지나가든 말든 별로 상관하지 않았던 달.


11월에 공휴일이 없는 우리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추수감사절이라는 가장 큰 명절이 끼어있는 서양에서도 ‘11월 답다’라는 형용사는 울적하고 음울하고 황량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걸 보면 말이다. 저무는 가을의 거리에서 뒹구는 잿빛의 낙엽과 힘없는 햇빛을 길게 매단 건물들의 그늘만 돋보이는, 그래서 변변한 추억 한 자락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기지 못하는, 말하자면 11월은 텅 빈 달이었다.


그러나 올해의 11월부터 이달은 나뿐 아니라 우리에게 풍성한 의미의 달로 바뀌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많은 기억을 남기는 꼭꼭 채워진 달이 될 것 같다. 아마도 올해의 11월은 뉴스를 보고 분노하고 뉴스를 보고 허탈한 웃음을 짓고 눈물 흘렸던, 그래서 뉴스의 구렁텅이와 뉴스의 용광로로 빠져들며 뉴스에 중독됐던 ‘뉴스의 시대’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초겨울의 칼칼한 내음을 품은 광장의 바람 속에서 느꼈던 촛불의 온기와 그을음의 냄새, 분노에 이끌려 그 넓은 곳을 꽉 채운 모습에 놀라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격려하고 안심하고 가슴 뻐근해지도록 느낀 감격과 함성의 달로 추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그해 11월에는 그곳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기억들이 이제 11월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자라난 젊은 세대들은 ‘4월 세대’ ‘6월 세대’가 아니라 ‘11월의 세대’가 되지 않을까. 11월 세대들이 우리 나이 때쯤 될 때면 정말 지금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기억만을 쌓아도 되는 그런 때가 오지 않을까. 쓸데없는 고민을 품길 좋아하는 나는 벌써부터 고민이다. 사일구 육이구 뭔가 딱딱 입에 붙는 날짜들인데, 만약 우리의 11월 기억이 교과서에라도 실리게 된다면 11월 12일을 ‘십일 십이’라고 불러야 하나 ‘일일 일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11월이 11월 세대들이 자랑스러워할 결실을 맺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한 차례의 폭풍 같은 열정이 몰아닥친 뒤 11월의 우리는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쳇바퀴 같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쩐지 광장에 쏟아지는 11월의 햇빛은 이제 결연해보이고 뒹구는 낙엽들마저 한껏 단호해 보인다. ‘11월 세대’들이 ‘12월 세대’로 불리게 되지 않도록, ‘늦어도 11월에는’ 우리의 희망이 결실을 맺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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