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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유영철 피해자 지문 161번 채취…나는 매일 밤 시신과 얘기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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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람마다 다른 지문은 태아 3개월 무렵 형성돼 평생 변하지 않는다. 만인부동 종생불변(萬人不同 終生不變)이다. 김희숙 경감은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해결할 때의 보람으로 산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람마다 다른 지문은 태아 3개월 무렵 형성돼 평생 변하지 않는다. 만인부동 종생불변(萬人不同 終生不變)이다. 김희숙 경감은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해결할 때의 보람으로 산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김희숙(54) 경감은 ‘시신(屍身)과 얘기하는 사람’이다. 살인·상해 등 강력범죄 현장에서 수사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다. 죽은 이는 말이 없지만 그는 ‘현장의 입’이 되기를 자처한다. 한 명이라도 억울한 원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매일 저녁 기도를 올린다. “언니, 지문이 잘 찍히도록 도와주세요. 처참한 모습이라도 좋으니 제발 오늘 밤 제 꿈에 나타나 조그마한 단서라도 주세요. 하루라도 빨리 그리던 부모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요.”

기도치고는 매우 절박합니다.
“때론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그만큼 간절한 거죠. 죽은 사람은 물론 유족들의 슬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모든 피해자가 제 가족 같습니다. 그들이 내 식구라고 생각하면 사건을 꼭 해결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깁니다.”
하루 일과도 기도로 시작한다고요.
“출근 직후 그간 해결했던 사건 피해자에게 다시 말을 겁니다. 오늘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요. 요즘엔 올봄 인천에서 발생한 한 여성의 변사 사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문 일부를 채취했지만 아직 신원을 밝혀내지 못했어요.”
나홍진 감독 영화 ‘추격자’의 모델이 됐죠.
“역할이 그리 크진 않았죠. 영화에서 여형사(박효주)가 지문이 잘 찍히도록 도와달라고 하는 장면이 나왔어요.”
김희숙 경감이 범죄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문 감정은 1㎜의 좁은 공간에 숨어 있는 개인별 특징을 잡아내는 작업이다.

김희숙 경감이 범죄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문 감정은 1㎜의 좁은 공간에 숨어 있는 개인별 특징을 잡아내는 작업이다.

김 경감의 타이틀은 묵직하다. 국내 첫 여경 CSI(과학수사) 1호, 국내 지문감정 1인자, 국내 최장 현장감식 여경 등등. 지난 9일에는 여경 최초로 경찰청 ‘과학수사대상’도 받았다. 이 덕분에 경위에서 경감으로 특진했다. 하지만 그는 여려 보였다. 동안(童顔)에 목소리도 밝았다. 순간순간 질문을 받아넘기는 여유도 있었다. 예컨대 이렇다. “승진을 축하합니다. 무궁화 두 개를 달았으니 부담이 크겠어요.” “예. 정말 무거워 죽겠어요. (웃음) 책임감 때문이죠.” “험한 범죄 현장을 누볐는데 꽤나 유쾌합니다.” “에너지 때문이죠. 그 원동력이 뭔지 물어보지 않나요. 다들 궁금해하던데….”

지문 감식 34년 ‘지문의 달인’
지난 1년 동안에만 강력사건 70건 해결
여경 최초 ‘과학수사대상’ 받아 특진

자신감이 넘친다. 그가 지문 감정을 시작한 때는 1982년, 어느덧 34년이 흘렀다. 2000년 순경으로 특채되며 현장 근무를 자청했다. 이틀, 혹은 사흘꼴로 밤을 새워야 하는 고된 일에 뛰어든 지 17년째다.

그래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죠. 그래서 지치지 않아요. 후배나 학생들에게도 말합니다. 가슴이 설레는 일을 찾아보라고요. 경험을 많이 쌓고, 다양한 책을 읽으라고 당부합니다.”
무섭지는 않나요. 워낙 담대했나요.
“어려선 겁이 많았어요.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이불 속에 숨어서 볼 정도였죠. 밤길도 잘 못 다녔고요. 이 일을 하면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되레 가슴이 뜁니다. 사건을 풀어야겠다는 집념과 열정 때문일까요. 직업이 사람을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이른바 천직을 만난 셈이군요.
“‘할 수 있다’ 정신을 믿습니다. 아주 작은 흔적에서도 사건을 풀 열쇠를 찾으려 해요. 지난여름 리우 올림픽에서 펜싱의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고 되뇌는 장면을 봤어요. ‘어! 나도 저런데’ 하며 혼자 웃었습니다.”
처음부터 CSI 요원을 꿈꾸었나요.
“아니요. 전남 순천의 작은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노래를 잘해 성악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대학을 갈 수 없었어요. 타자·부기학원을 다닌 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인근의 새마을금고에서 잠시 일했죠. 그때 치안본부(현재 경찰청) 채용 광고를 봤어요. 당시 교육 성적 1등으로 가장 어렵다는 지문감식과에 배치됐습니다.”
출발이 경찰이 아니었군요.
“행정관이었죠. 전문 능력을 인정받아 순경으로 특채됐습니다. 그것도 여경으론 처음일 겁니다. 이후 경장→경사→경위→경감으로 특진에 특진을 했습니다. ‘지문의 신’ ‘지문의 달인’ ‘지문 박사’라는 별명이 붙었죠.”
 ‘1호 인생’ ‘특진 인생’입니다.
“승진하려고 일한 건 아닙니다. 열심히 달렸을 뿐입니다. CSI라는 게 드라마나 영화와 크게 다릅니다. 감식 현장에 가면 화장실도 못 갑니다. 범행 흔적이 망가지면 절대 안 되죠. 소변을 참는 게 몸에 배었는지 현장에 가면 생리욕구가 사라집니다. 끼니를 거르기도 다반사고요. 밤새 지문을 감정하다가 응급실에 네 번이나 실려 갔습니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실 설명 문구.

서울경찰청 과학수사실 설명 문구.

김 경감은 ‘똑순이’다. 방송통신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했고, 한성대 대학원 국제마약학과를 졸업했다. 올 6월에는 고려대 평생대학원 약물중독재활상담전문가 최고위 과정도 수료했다. 국내외 지문 연구를 독학하며 전문성을 닦았다. 여성 최초의 ‘현장감식 전문수사관 마스터’로 지난 1년 동안에만 500건이 넘는 현장에 출동했고, 70여 건의 지문 해독으로 크고 작은 사건 해결에 기여했다. 80명 가까운 변사자·교통사고 사망자의 신원도 확인했다.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이 끔찍했죠.
“2003~2004년 일이죠. 범인은 피해자들 지문을 가위로 오려 변기에 넣어버렸어요. 그중 한 시신의 뭉개진 지문을 161번이나 채취한 적이 있습니다. 보다 정확한 모양을 얻기 위해서였죠. 당시만 해도 DNA 분석은 보름이나 걸렸습니다. 한 시간, 하루가 아까웠었죠.”
요즘도 지문을 남기는 범인이 있습니까.
“사건 현장에서 완전한 지문은 드뭅니다. 훼손된 게 많죠. 보통 쪽지문이라고 합니다. 열손가락 지문 중 극히 일부를 놓고 분석하기도 하죠. 고도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죠. 지문의 5%만 남아 있어도 신원을 알아낼 수 있어요. 백골이 되거나 부패한 시신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국 과학수사는 세계 정상급입니다.”
어떤 기법을 주로 사용합니까.
“구체적인 건 공개할 수 없죠. 다만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일례로 지문 채취 시약만 해도 독성이 강합니다. 메탄올을 많이 쓰는데 처음에는 그 누구도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간 시력이 2.0에서 0.5로 떨어졌습니다. 친가·외가 어느 쪽에도 암환자가 없는데 저만 갑상샘암에 걸리기도 했고요. 그게 꼭 업무 때문은 아니겠지만요.”
각종 감식 시약들.

각종 감식 시약들.

몸이 많이 상하겠습니다.
“하루 12시간 서서 일한 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밤샘 작업이 가장 힘들어요. 몸에 밴 까닭인지 쉬는 날에도 밤에 돌아다니곤 합니다. 그래서 숙면을 이루지 못해요. 현장 근무 이후 하루 2시간 이상 길게 자본 적이 없습니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쪽잠의 연속이죠.”
행정직으로 남았으면 좋았겠어요.
“아닙니다. 그러면 경찰에서 의뢰한 사건만 처리하잖아요. 수동적인 건 싫어요. 지금도 지문은 대부분 행정직에서 분석합니다. 또 서울청 현장감식반 250여 명 가운데 최근까지 여경은 5명밖에 없었습니다. 한 달 전 새내기 5명이 충원돼 지금은 10명으로 늘었죠.”
요즘엔 컴퓨터 도움을 받지 않나요.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17세 이상 성인 지문 정보 5000만 매(1매는 열손가락)가 들어 있죠. 컴퓨터는 우선 순위만 보여줍니다. 개인별 특징을 낚아채지 못합니다. 특히 훼손된 지문은 전문가가 일일이 원본과 대조해야 해요. 한 달이 넘게 걸릴 수도 있죠. 사람과 컴퓨터의 비중이 8대 2쯤 됩니다.”
가족의 도움이 컸겠습니다.
“남편이 공무원인데 고마울 뿐이죠. 요리학원을 다니며 아들 둘을 챙기기도 했어요. 경감으로 승진하던 날 펑펑 울었습니다. ‘여자가 그렇지. 이런 일은 역시 못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애써온 때문이겠죠. 함께해 온 동료에게도 감사하고요. 앞으로 지문 관련 이론 및 실무를 정리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아직 외국에 비해 체계적 교육이 부족하거든요. 내년쯤 박사 과정도 준비하고요.”

성악가 꿈꾼 문학소녀…2002년 시인 등단도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 없이 그 벽을 오른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도입부다. 김희숙 경감이 좋아하는 시 가운데 하나다. 담쟁이는 포기를 모른다. 한계를 넘어선다. 변화와 도전, 인내와 결실을 상징한다.

“어릴 적에 국어는 늘 만점이었어요. 시인이 되고 싶은 꿈도 있었고요. 실제로 2002년 계간 ‘공무원문학’을 통해 등단한 적도 있습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을 넘는 담쟁이를 보며 가끔씩 저를 돌아보곤 합니다.”

김 경감은 자신의 필명 ‘한강’도 공개했다. 요즘은 일에 바빠 자주 펜을 들지 못하지만 예전엔 인터넷 문학카페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말했다.

“집이 서울 서대문 근처인데 시간이 나면 한강에 나가 평소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를 풉니다. 특히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해요. 쏟아지는 비를 강물이 다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죠. 일종의 치유이자 정화라고 할까요.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출사(出寫)도 나갑니다. 술을 못하는 대신 시와 사진으로 피비린내 나는 감식 현장에서 잠시 떠나 있는 셈이죠.”

그가 다른 애송시 한 편을 꺼내 들었다. 나태주의 ‘풀꽃’이다. ‘가까이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시에 그려진 ‘너’가 혹시 그에게는 지문으로 보이진 않을까. “하하하. 끈기 있게,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점에선 같네요.”

글=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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