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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90년대 월수입 5000만원 일타강사 “제자들 취업 못해 부끄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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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300억 ‘창의투자재단’ 만든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지금 여기 있는 학생들은 반드시 올해 입시에서 실패합니다!”

사고로 잃은 딸 이름 딴 재단 만들어
내년 청년 스타트업 뽑아 창업 지원
가고 싶은 곳 선지원 후시험이 공정
입시는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 해야

6년 전인 2010년 2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메가스터디 입시 설명회. 무대에 오른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의 일갈에 1만4000여 좌석을 가득 메운 예비 고3 학생과 학부모의 얼굴이 굳었다. 손 회장은 “1년 만에 성적이 오르는 건 혁명을 넘어선 기적”이라며 “목숨을 걸라”고 외쳤다. 청중은 바쁘게 그의 말을 받아 적었다.

손주은 회장은 “자본주의에서 부자가 된 것은 99% 타인 덕분”이라며 “내가 가르친 청년 세대를 위해 부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손주은 회장은 “자본주의에서 부자가 된 것은 99% 타인 덕분”이라며 “내가 가르친 청년 세대를 위해 부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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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수능 세대’ 사이에서 손 회장의 독설은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손 회장은 입시설명회에서조차 “학생에게 공부가 희망이라고 했던 게 후회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사재 100억원을 출연해 ‘윤민창의투자재단’이라는 공익재단을 설립했다. 청년들의 창업을 돕겠다는 취지다. 자신이 써 내려간 ‘사교육의 전설’을 후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 회장을 15일 서울 서초동 메가스터디 본사에서 만나봤다.

90년대 ‘손사탐’이란 별명으로 최고의 인기 강사가 됐고 2000년 메가스터디를 설립해 성공했다. 왜 후회한다고 말하는가.
“강사 시절 책상 위에서 학생들 낙서를 본 적이 있다. 잘나가던 야구선수 박찬호와 내가 버는 돈을 계산해 보고는 ‘XX 손주은이 더 버네’ ‘강의 한 번에 차 한 대네’라고 써놨는데 그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만 있는 사교육 열풍이 아니었으면 내가 그렇게 돈을 버는 건 불가능했다. 한창 때 가르치던 학생들이 지금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인데 너무나 어려운 처지다. 나는 공부가 희망이라고 했는데 실상은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은 쉽지 않고 미래는 어둡다. 내게 많은 돈을 지불해서 나는 부자가 됐는데 그들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것에 부채 의식이 있다.”
사회 환원엔 여러 방법이 있다. 왜 ‘창업’인가.
“4차 산업 시대에 필요한 건 결국 창의적 인재다. 이런 인재들을 길러내고 지원하려면 창업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힘들어하는 젊은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지원 방법이 창업 지원이라고 생각했다. 장학재단이나 최상위 영재를 타깃으로 하는 재단 등도 생각해봤지만 아직 민간 부문의 지원이 미흡한 게 창업 분야라고 봤다.”
손 회장 집무실에는 관동별곡의 시구가 적혀 있다. ‘힘없는 백성을 다 살려내고 싶다’는 의미다.

손 회장 집무실에는 관동별곡의 시구가 적혀 있다. ‘힘없는 백성을 다 살려내고 싶다’는 의미다.

손 회장은 약 1년간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달 재단 설립을 공식 발표했다. 100억원을 출연했고 앞으로 200억원을 추가 출연할 계획이다. 본인은 이사로 이름을 올렸고 이사장은 오연천 울산대 총장이 맡았다. 재단 이름인 ‘윤민(潤民)’은 91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의 이름이다. 손 회장은 “딸 이름이지만 ‘백성을 잘살게 한다’는 뜻이 재단의 취지와도 맞는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뭘 하려는 것인가.
“주력 사업은 청년 창업에 대한 투자·지원이다. 내년 상반기께 공모 형태로 청년 스타트업 기업을 선발해 지원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지원해주면서 ‘나중에 성공하면 지분 1%는 새로 창업하는 후배 스타트업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쓴다’는 약정을 맺으면 어떨까 싶다. 또 초등학교·중학교에 창업 체험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려고 한다. ”
입시 얘기를 해보자. 수십 년간 대학 입시 변화를 지켜봐온 전문가로서 가장 바람직한 입시제도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선지원 후시험 제도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고 싶은 대학에 가서 시험 보는 게 공정하지 않은가. 지금은 점수를 받아놓은 다음 눈치 보며 복수 지원해서 걸리는 대학에 가는데, 이건 일부 최상위권 학생과 대학만을 위한 제도다. 상위권 대학끼리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위권 이하부터는 최상위권이 어느 대학으로 빠지느냐에 따라 자기가 갈 대학이 결정된다.”
지금의 학생부종합전형은 어떤가.
“학종은 스펙 만들기 쉬운 고소득층에 유리한 제도다. 상류층, 중산층이 고착화되고 있는 게 사회적 문제인데 입시제도까지 한몫 거들어서는 안 된다.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에도 반대한다. 결국 각 지역의 전교 1, 2등을 위한 제도다. 차라리 하위 10%에서 정원의 20%를 뽑는다든지 하는 식의 ‘계층균형선발’이 더 공정하지 않을까. 입시만큼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수능이 올해로 24년째다. 수능의 생명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과거 수능은 말 그대로 수학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시험이었는데 지금은 유형과 난이도가 정해져 버려 효용성이 약화된 시험이다. 공정성 문제 때문에 없앨 수는 없겠지만 ‘쉬운 수능’을 표방하면서 변질된 것이 아쉽다.”
본인 스스로 교육자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기업인이라 생각하나.
“교육자라기엔 부끄럽고 기업인이라기엔 부족하다. 강의 스킬은 뛰어나다고 자부하지만 선생다운 모범적인 삶을 살았나 되돌아보면 부끄러운 부분이 있다.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온라인 교육을 상용화해 성공했지만 이후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도전은 부족했다. ”

학원 연 매출 수백억 좌우…스타강사 영입 경쟁

손주은이란 이름이 대치동 학원가의 전설이 된 것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은 보습학원을 운영하다 그만둔 손씨는 그해 강남대일학원에서 처음으로 사회탐구 강의를 맡게 된다. 무명 강사였기에 수강생은 8명뿐이었다. 하지만 역사·지리·윤리·사회를 융합한 ‘통합사회’로 차별화한 그의 강의는 점차 입소문을 탔고 6개월 만에 수강생이 2000명으로 늘며 ‘손사탐’이란 별명을 얻었다. 월 수입이 5000만원이 넘는 명실상부 ‘일타(담당 과목 매출 1위) 강사’가 된 것이다. 손사탐의 인기는 계속 높아져 2000년 초에는 한 달에 가르치는 수강생이 6000명을 넘을 정도였다.

지금도 학원가 일타 강사의 파워는 막강하다. 일타 강사가 소속을 바꾸면 업체 매출이 출렁인다. 2014년 수학 일타 강사인 신승범씨가 메가스터디에서 이투스로 옮긴 게 대표적이다. 당시 신씨가 올리는 연간 350억원의 매출이 고스란히 이투스로 옮겨온 것이다. ‘삽자루’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수학강사 우형철씨는 지난해 이투스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타 업체로 옮겼다가 법원으로부터 126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만큼 몸값이 높다는 의미다. 학원 관계자는 “일타 강사를 보유해야 학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스타를 데려오려는 출혈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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