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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클릭] “엄마 압구정초 이사 가?” …교육 문제로 번진 재건축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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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수제한과 노른자 땅 공원화 이슈로 서울시와 주민 간 갈등을 빚어온 압구정동 재개발 계획이 압구정초 이전이라는 교육문제까지 더해져 더욱 복잡해졌다. 압구정초 교문 옆에 이전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강정현 기자

층수제한과 노른자 땅 공원화 이슈로 서울시와 주민 간 갈등을 빚어온 압구정동 재개발 계획이 압구정초 이전이라는 교육문제까지 더해져 더욱 복잡해졌다. 압구정초 교문 옆에 이전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강정현 기자

조망권 vs 재산권 다툼서 교육 갈등으로
“ 아이들 위한 운동장 줄어” 반대 서명도
서울시 “35층 층수제한 계획 흔들 의도”

‘서울시의 압구정초 이전 결사반대!’

3주 전부터 서울 압구정초등학교 담벼락에 걸려있는 현수막 문구다. 재건축 아파트 층수제한과 노른자 땅 공원화(化) 이슈로 시끄럽던 압구정동 재개발 계획이 초등학교 이전을 둘러싼 교육문제까지 겹쳐지며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달 발표한 압구정동 재개발 계획안에 따르면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내에 위치한 압구정초는 100여m 떨어진 압구정 고등학교 쪽으로 옮겨진다. 서울시는 “층수가 낮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한곳에 모아 놓으면 시민들의 한강 조망권이 개선되고 압구정동 주변 교통 흐름도 원활해 진다”는 이유로 학교 이전 방침을 내놓았다. 주민 반발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서울시 계획안이 발표되자마자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를 중심으로 술렁였다. 이 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김태은씨는“초등학교를 옮긴다는 장소는 아무리 봐도 지금만큼의 운동장 규모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비싼 이전비용까지 들여가며 아이들이 뛰어 놀 운동장 크기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압구정초 운동장은 이 학교 재학생만 쓰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하교한 저녁이나 새벽엔 동네 주민들이 조깅도 하고 배드민턴 치는 공간”이라며 “마땅한 대안도 없이 초등학교를 옮기는 건 무책임한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서울시 계획상으로는 초등학교와 담장이 맞붙게 될 압구정고 학부모들 역시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 이모(45·압구정동 거주)씨는 “초등학교는 운동장에서 하는 시끄러운 행사가 잦은 탓에 고등학교 옆으로 이전하면 학업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며 이전을 반대했다. 압구정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학부모 780여 명은 초등학교 이전 반대서명을 모아 서울시에 제출했다.

학부모들은 서울시가 학교 이전 이유로 든 조망권 개선이라는 설명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구현대 올바른재건축추진위원회의 안중근 부위원장은 “초등학교가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면 오히려 각 동 간 거리가 확보되어 시야가 트인다”며 “초등학교 이전 공사 비용 역시 주민들이 부담하게 될 가능서이 적지 않은데 도대체 누굴 위한 계획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예상치못한 주민 반발에 부딪힌 서울시는 일단 “아직 확정된 게 없다”고 한 발 물러섰다. 신동권 서울시 공동주택과 팀장은“주민과의 협의를 통해 조정할 부분은 조정하겠다”면서도 “주민들이 걱정하는 운동장 축소 부분 등은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재개발안을 내놓기 전 서울시 의뢰로 부지 조사를 담당한 용역업체 조사 결과 운동장 규격을 확보하는 데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로 이전할 경우 학교 건물이나 운동장 규격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가 전혀 없다.

서울시는 주민들이 초등학교 이전 문제를 들고 나온 데는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서울시와 주민 사이에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은 재산권과 관련한 35층 층수제한 등인데, 우회적으로 학교 이전 문제를 들고 나와 전체 서울시 계획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기류 탓인지 서울시는 압구정초 이전문제에 대해선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면서도 주민 반발이 가장 심한 35층 층수제한 문제는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여러 번 강조했다. 최진석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은 “35층 층수제한은 무분별한 초고층 건축으로 한강변 경관이 침해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며 “도시경관을 보호하고 조망권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용적률 등 국토법을 서울 특성에 맞게 재구성한 서울2030플랜의 한강변관리기본계획에 따른 원칙이기도 하다.

조망권 사유화 방지, 바로 이 부분을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주민과 입장을 같이하는 강남구청 관계자 역시 “서울시의 35층 층수제한은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극도의 행정편의주의”라며 “주민 의견을 수렴해 모든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구현대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는 의견서를 통해 “최고층을 35층으로 획일화하면 오히려 단지가 두부모같이 폐쇄적으로 조성된다”며 “최대 층수를 45층까지 높이고 평균을 35층으로 조정하면 스카이라인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문화공원 조성 계획을 놓고도 서울시와 주민간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한강변 쪽으로 구현대 12, 13동이 있는 동호대교와 성수대교 사이의 굴곡부 땅에 2만5000㎡ 면적의 역사문화공원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이곳에 한명회 정자로 알려진 압구정을 복원한 역사문화공원을 만들겠다”며 “압구정 주민 뿐 아니라 다른 시민도 한강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겠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은 당연히 반발한다. 이 땅은 한강 조망권이 뛰어나 압구정동 구현대 아파트 가운데서도 노른자 땅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그런 명당 자리를 현재 살고 있는 주민에게 빼앗아 모든 시민에 공개하겠다는 건 명백한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입대의는 ‘주민 종합의견서’에서 “사료에 근거를 둔 것도 아니고 강변 요지 정중앙, 그것도 공공 접근성이 떨어지는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차라리 동호대로 옆에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일반 시민의 접근성이나 경관을 고려했을 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5년 넘게 이어진 재개발 논쟁에 피로감을 느낀 일부 주민들은 직접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나섰다. 현재 압구정동에는 ‘재건축준비위원회’ ‘새로운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올바른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등 다양한 재개발 관련 주민단체가 생겨나고 있으며 이들은 지난 달 부터 각각 따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지구단위 계획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서울시가 주민이 원하는 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협상 창구가 점점 다변화하며 일이 꼬여가는 양상이다.

서울시는 “공람을 통해 취합된 주민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주제별로 분류해 해당 부서와 협의를 거칠 것”이라며 “합리적인 지적이라고 판단되면 도시계획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지구단위계획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부지 이전이나 공원 조성 등은 얼마든지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인 35층 층수 제한은 서울2030플랜에 따른 원칙인 만큼 재검토 가능성이 없다는 게 서울시의 일관된 입장이다.

글=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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