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라는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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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먼저 「정년」이라는 말부터 고쳐야한다. 이 제도의 원래 뜻대로 하면「은퇴연령」이라야 옳다. 세계적으로 쓰이는 경제용어에도 「정년」이라는 말은 없다. 「리타이어먼트 에이지」, 글자 그대로 「은퇴연령」이다.
필경 일본의 용어를 따른것 같다. 그 일본에서 조차도 요즘은 정년이라는 말대신 「정년」이라고 한다. 고유한 우리 용어가 없으면 차라리 그 말을 받아쓰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정년이라면 어딘지 사회활동의 정년, 인생의 정년까지도 부고하는것 같아 당사자의 마음은 더욱 더 적막할 것이다.
어디 마음뿐이랴. 우리 사회는 정년자를 받아들일 구석이 없다. 정년을 맞으면 실제로 모든 정년이 하루아침에 다가오는 것이다.
이 제도가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중국역사를 보면 벌써 고대부터 그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치사(치사)라고 해서 벼슬하는 사람이 어느 나이에 이르면 임금에게 그 벼슬을 반납하고 물러갔다. 그때 나이가 자그마치 「70」이었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어 신라나 고려때 많은 벼슬아치들이 꼬박 법도를 지켰다. 신라말의 명관 최치원이 그랬고,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도 7O에 치사표를 올렸다.
그 시대 연령 70이면 종신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의 제도와는 개념이 다르지만 은퇴연령을 그처럼 후하게 매긴 것은 뜻밖이다.
서양에는 이 제도가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 프러시아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1889년 은퇴연령을 65세로 정하고 시행했다.
그 뒤를 따라 영국에서는 1908년에, 미국에서는 1935년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
구미의 추세는 60∼70세를 은퇴연령으로 삼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는 65세다.
그러나 은퇴연령은 어느나라나 일률적으로 정할 일은 아니다. 그 나라의 경제발전단계와 평균수명등이 참작되어야 한다. 대체로 후진국의 은퇴연령이 55세인 것은 그것을 입증해 준다.
선진국의 경우는 은퇴연령도 높지만, 은퇴후의 생활까지도 그 사회가 보장한다. 평생의 노고를 보상해 주는 것이다.
그뿐아니라 미국과 같은 나라는 은퇴자의 노동참여률이 20%(1979년)나 된다. 노련한 경륜을 그만큼 사준다는 뜻이다.
비로소 우리 나라도 「은퇴연령」연장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국영기업의 경우 55세에서 60세로 늘린다.
우리도 이제 숙년(55∼65세)세대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 나이는 들어도 늙지 않는 시대에 맞는 고용제도로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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