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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아이아코카 「프로디경영」화제|「교수사장」으로 부실 IRI 회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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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계 최대의 국영기업이면서 유럽 최악의 부실기업으로 꼽히던 이탈리아의 IRI가 회생의 길로 들어섰다. 80년대 이후 새롭게 일고있는 이탈리아의 경제부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IRI는 뭇솔리니에 의해 세워진 이후 49번의 정권이 바뀌면서 수십 억 달러의 돈을 써가며 유지돼 왔다. 그러나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IRI는 유럽 최악의 채산성 부재기업으로 꼽혔다. 그러나 저명한 경제학 교수인「로마노·프로디」가 경영을 맡은 82년부터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지난 73년 이후 처음으로 IRI는 올해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80년대 들어 이탈리아는 새롭게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섰다.
크게는 피아트 같은 거대기업부터 작게는 가족경영회사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나 경영자나 할 것 없이 이윤·생산성·성장 등이 갖는 중요성에 새롭게 눈을 뜨게됐다.
70년대에 광적인 인플레·노사분규 등을 치른 이탈리아경제는 이제 유럽에서 가장 활력 있는 상태로 바뀌었다. DRI는 올해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을 3·4%로 서독·불·영을 능가 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이탈리아사람들도 87년에는 자신의 정제가 서방세계5위인 영국을 앞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RI의 회생은 이 같은 이탈리아 자본주의 부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IRI는 창립이후 이탈리아정치가들이 경제계획을 실현하는「도구」로 쓰여져왔다.
대공항 시대에는 국내의 파산은행을 지원했고 2차대전후에는 고속도로 건설과 전화·TV·항공 등의 국영사업을 수행했고 조선과 철강산업을 주도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는 사회복지정책을 수행하는 한 방편으로 간주되면서 고용을 유지하고 부실기업을 대거 흡수하는 기능을 떠맡게됐다.
80년대초 IRI는 1천개의 기업에 50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이탈리아 최대의 기업이 됐다. 유럽최대의 철강회사를 운영하고 이탈리아 은행 중 20%를 소유하며 국영TV방송과 알파 로메오자동차회사·알이탈리아항공 등이 산하에 들어있다.
IRI는 이탈리아 총고용 인구의 3%, 기업 R&D투자의 30%를 차지하는 거대 기업군이 됐지만 속으로는 연간 최고 20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연간 총매출을 넘는 2백43억 달러의 부채를 짊어진 기업이기도 했었다.
81년 당시 회장이던 「피에트로·세테」는 우울하게 IRI는 가라앉고 있다』 고 선언하고 IRI의 붕괴는 국가경제의 위기를 몰고 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스파돌리니」 수상은 당시 43세이던 「프로디」 교수에게 IRI의 비효율성을 없애도록 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프로디」 는 즉각 정부가 임명한 사람들을 민간기업의 경영자들로 교체했다.
그는 불필요한 인원이라도 그대로 남겨두었던 금기를 깨고 취임 후 4년간 6만 명의 근로자를 해고시키는 한편 IRI자산의 매각에 나섰다. 그는 이를 수행하면서 정치인들에게 민간경영방식으로 전환해야할 필요성을 누누이 설득시켰다.
82년부터 IRI산하의 많은 기업들이 이윤을 남기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3백40억 달러의 기록적매출을 올렸다. 국가보조가 줄고 82년에 3억 달러이던 유동자산이 지난해 40억 달러로 늘었다.
「프로디」 는 그간 20개의 기업체를 팔아치웠으며 올 1월에는 알파로메오를 피아트에 12억5천만달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는 10여년간 시설과잉과 생산성 적자로 해마다 적자를 내왔었다.
또 알이탈리아와 국영전화회사인 SIP의 과다주식을 밀라노증시를 통해 매각했다. IRI는 그 동안 총 3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매각했다.
「프로디」 는 하루 15시간을 일하면서 IRI계열 각사의 경영자나 재정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눈다.
그의 목표는 그의 경영 전략에 대해 사내여론의 지지를 받고 궁극적으로 IRI가 민간기업처럼 운영돼 나가게 한다는 데 있다.
그의 지론은 기업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취임 후부터 이를 주입시키는데 진력해왔다. 기존의 경영책임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를 증명해야만 했다.
「프로디」는 취임 후 IRI본사의 경영자중 70%를 갈아치웠고 주요부서의 중견간부들 50%를 교체했다.
이제 그는 공적에 따른 봉급 차등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가 나아지면서 소수의 경영자만이 전보다 적은 봉급을 감수하고 있는데 대체로 상향추세다.
노사분규를 사전에 막기 위해 그는 정기적으로 노사협의회를 갖고있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면 파업을 벌이기전에 양쪽이 여러 차례 만나 사전조정작업을 벌인다. 그 결과 지난 82년 이후 IRI는 종업원의 10%이상을 감축했는데도 파업으로 작업이 중단된 시간은 종업원 1인당 23시간에서 85년에 5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그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탈리아의 정치가들이 아직도 1RI가 국가에 의해 운영돼야하며 국민경제의 중추척 역할을 수행해야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과감한 매각과 수술계획이 잘 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부적으로는 전화와 은행처럼 아직도 세계적 기준에 맞춰보면 크게 낙후된 부문이 많아 손 쓸데가 적찮다는 것도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비관보다는 낙관이 앞서는 분위기다. 막대한 예산적자, 10%의 실업률에도 불구, 이탈리아는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낙관적인 분위기로 차있으며 이탈리아사람들은 창조에 대한 그들의 재능을 재발견하고 있다. 「프로디」 가 이 같은 정신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프로디」 자신은 정치와 기업 경영에 경험이라곤 거의 없던 사람이었다.
밀라노와 런던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볼로냐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74년에는 하버드대에 교환교수로 가있기도 했다.
그러나 IRI를 맡고 나서 보여준 수완으로 「프로디」 는 최근 레스프레소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올리베티사의 「베네데티」 회장과 피아트의 「아니엘리」 를 능가하는 이탈리아 최고의 기업가로 꼽혔다.
IRI와의 계약이 끝나는 89년 이후 그에게는 새로운 경영자로서의 기회나 정치인으로서 인신의 길이 보이지만 스스로는 다시 대학강단에 돌아가기를 바라고있다.

<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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