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상 수상 작품들|이달의 시 김재홍<문학평논가·인하대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해마다 새해 벽두의 신춘문예장이 파하고 나면 1,.2월에는 각종 문학상 시상잔치가 벌어진다.
올해에도 예년과 같이 여러 종류의 시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되어 시상식이 요즈음 한창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올해의 시문학 부문의 수상자 가운데에서 이수당 (현대문학당) ,고은 (한국문학작가상),정종규 (현대시학작품상), 그리고 오세영(소월시문학상)등은 최근 우리 시의 몇가지 동향을 특징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먼저 이수당은 수상작인 시집『단순한 기쁨』에서 이땅 시의 원류인 서정시의 아름다운 한 전범을 제시하여 주었다. 그는 63년 데뷔한 이래 20여년간 순도높은 서정을 섬세한 가락의 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한국시의 내질을 심화하는데 기여해 왔다.
「봄에는/혼자서는 외롭다, 둘이라야 한다, 혹은/둘 이상이라야 한다/둘은 물끼리 흐르고/꽃은 꽃끼리 피어나고/하늘에 구름은 구름끼리 흐르는데/자꾸만 부푸는 피를 안고/혼자서 어떻게 사나, 이 찬란한 봄날/가슴이 터져서 어떻게 사나/그대는 물 건너/아득한 섬으로만 떠있는데」(「봄날에1」전문)라는 한 작품에서 보듯이 자연과 인간이 어울려 감각적으로 육화된 서정시의 한전법을 보여준다. 그의 부드럽고 유려한 가락 속에는 삭막한 현대의 벌판 속을 헤쳐가는 삶의 비애와 탄식이 짙고 아름답게 깔려 있어서 은은한 감동을 던져준다.
고은의 수상작인 시집 『만인보』 는 80년대 문학의 큰 흐름인 이른바 민중시의 자리 잡힌 모습을 보여주어서 주목을 환기한다. 『만인보』란 고은이 세상살이에서 만난 개인적·사회적·역사적 인물들을 두루 형상화하여 삶의 총체적인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 회심의 역작이자 80년대 시단의 한 성파에 속한다. 특히 80년대에 들어서서 이 땅의 많은 시는 도시 빈민과 근로자, 농민들의 척박한 삵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당대 현실의 열악한 환경과 그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소리 높여 외쳐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은의 『만인보』는 집단의 도식화된 목소리와 상투화된 유형성을 벗어나서 낱낱의 삶이 지니는 구체적 진실에 대한 밀도 있는 응시와 애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시집 『만인보』는 개인적 삶의 구체성과 그 진실을 통해서만이 사회적 삶, 역사적 삶에로의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소중한 확신을 제시한데서 주목에 값하는 것이다. 한편 오세영은 신선한 패기와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어 관심을 끈다. 그의 연작시 『무명련시』와『그릇』은· 이 땅의 서정시가 철학성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날카롭게 제시했였다. 특히 수상기법시인 『구룡사시편』들은 사물을 감각적으로 내면화하고 이 속에 관념을 담는 한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밖에도 정종규는 요즈음 유행하는 산문시의 가능성울 수상시집 『뼈에 대하여』에서 폭넓게 필쳐 보여 주었다.
감춤으로써의 시정신과 드러냄으로써의 산문정신을 적절히 교직하여 정신의 깊이와 표현의 넓이를 함께 제시한 것이다.
이제 신춘문예시상과 문학상잔치가 마무리되고 있다. 또다시 이 땅의 시인들은 신들메를 고쳐매고 전력으로 고독하게 질주하여야 할 87년의 문학적 지평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을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