昏君 -혼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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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29면

가장 높은 자리에서 집단을 이끄는 존재가 君(군)이다. 글자 가운데 尹(윤)은 초기 한자 형태에서 손으로 지팡이 등을 쥔 모습을 가리켰다. 아래 口(구)는 풀이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역시 권력을 상징하는 주술적인 기물(器物)로 볼 수 있다.


따라서 君(군)은 초기 인류 사회에서 주술적인 제례(祭禮)를 관장하는 제사장 정도의 인물로 볼 수 있다. 종교적 의례가 곧 정치의 요소와 결합했던 과거 사회의 속성을 볼 때 이는 최고의 권력자에 해당한다. 그로부터 이는 ‘임금’을 가리키는 글자로 자리를 잡았다.


사리를 가리지 못해 나라 전체를 쇠락으로 이끄는 임금을 표현한 말이 바로 혼군(昏君)이다. 저녁 무렵의 어두침침한 모습의 형용이 昏(혼)이다. 어딘가에 가려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무능한 군주다. 난군(亂君)이나 암군(暗君)도 같은 맥락이다.


무능함이 돋보이는 임금에게는 용군(庸君)이라는 단어를 썼다. 일을 결코 제대로 이뤄낼 수 없는 군주다. 도군(倒君)이라는 말도 제법 흥미를 자아낸다. 잘못을 범했으면서도 그를 되돌리려 하지 않은 임금을 가리킨다.


타군(惰君)도 눈에 띈다. 성정이 게을러 국사를 망친 임금이다. 교군(驕君)이라는 단어도 있다. 지닌 권력에 취해 국민의 수준에 시선을 맞추지 못한 리더다. 눈과 귀를 닫고 지내 생각과 시선이 궁색한 곳만을 향하다 결국 사달을 낸 사람이다.


어딘가에 빠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간신 등의 음험함에 빠져 상황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지도자는 미군(迷君)이다. 깊고 단단한 옹벽에 갇힌 듯 어두운 사람들에 싸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임금은 옹군(壅君)이라고 했다.


제 좁은 식견에 갇혀 고집만 부리는 사람도 있다. 남의 견해를 전혀 듣지 않고 제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사람은 방종(放縱)의 임금, 즉 종군(縱君)이다. 그러다 나라마저 휘청거리게 만들어 국기(國基)까지 흔드는 위기를 불러들이면 곧 망군(亡君)이다.


누구를 이야기하는지는 새삼 적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탓만 하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리더십의 선택에 실패한 우리 모두의 실패가 아닐 수 없다. 정쟁을 멈추고 여야 모두 자중(自重)으로써 국난(國難)과도 같은 상황을 잘 극복해야 할 때다.


유광종중국인문 경영연구소 소장ykj33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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