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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테스토스테론과 북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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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31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각국이 트럼프 당선이 자국에 어떤 영향을 줄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엔 북한도 포함된다.


선거 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시사했다. 북한이 트럼프를 좋아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사실 누가 공화당 후보가 되었더라도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보단 선호했을 것이다. 클린턴은 수년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무장관으로서 북한에 강경 노선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마냥 환영하는 게 맞는 걸까.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기간 그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 거의 언급한 적이 없다. 캠페인 초반 “북한의 김정은과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트럼프는 이 일로 워싱턴 대북정책기관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후 트럼프의 참모인 피터 후크스트라는 취재진에게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아직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마 그는 앞으로도 대북정책을 즉흥적으로 둘러댈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한반도 정치방정식의 주요한 변화다. 북한은 처음으로 대북정책이 불확실한 미국을 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평양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과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모두에게 상당한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기질을 고려해 그의 대북정책을 예측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우선 트럼프는 강력한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이 제한당하는 것에 대해 짜증을 표출했다. 트럼프 대선 캠프 인사를 잘 아는 내 지인에 따르면 트럼프는 고위 군 관계자들과 회의 때 미국이 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지 반복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그는 또 공공연하게 이슬람국가(IS)에 “폭탄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마디로 불안함의 혼합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트럼프의 정권이양 기간 무엇을 할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 10주의 준비기간이 남아 있다. 나는 평양(북한)이 우선 트럼프에게 그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만남을 제안했던 걸 상기시킬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는 이 기간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추가 핵실험이 가장 가능성 큰 선택지다.


북한은 트럼프 취임 뒤 백악관 집무실에 있는 트럼프를 상대로 핵실험을 감행하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유발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10주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몰아서 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 하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는 정치적 책임을 지거나 이에 반응할 필요가 없다.


대북 전문가들은 미 대선과 북한 도발 사이의 시차가 지속적으로 짧아졌다는 것에 주목했다. 즉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이후의 미사일 실험은 앞으로 몇 주 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런 북한의 도발은 국제사회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규탄성명 채택에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중국이 미국의 모든 제안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의 입장 정리에도 비슷한 진통이 예상된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제재는 4차 핵실험 이후 안보리 제재 2270호 때 최고 수위에 도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중국은 내년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둔 국내 정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미국과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경계해왔다. 즉 향후 북한 도발에 대한 안보리의 반응에 동의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양자 간 제재를 통해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겠지만, 이는 북한을 단기에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북한에 단호한 제재를 허용할 가능성도 낮다.


따라서 북한이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내년 1월 20일 이전에 추가 도발을 한다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논평은 하겠지만,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의 난제를 민주당의 정책 실패로 치부할 것이고, 그의 마음에 더 닿는 이슈에 집중할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그들의 핵무기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나가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의미다. 더욱이 북한에 점점 관대해지는 중국의 우산 아래서 말이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 재직 중 핵이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다면 오바마 대통령 하에서 봤던 대북 제재보다 더 격렬한 반응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품 없는 나라가 자신이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한 미국을 비웃는다고 느낄 것이다. 이는 테스토스테론으로 채운 감정 폭발과 갑작스럽고 단호한 행동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나는 그것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설 것 같고, 통제하기 매우 어려운 일련의 사건을 점화시킬까봐 두렵다.


북한은 향후 한국의 대북 스탠스도 눈여겨 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조짐이 있는지 근심스럽게 지켜볼 것이다. 만약 남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시작되면(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스캔들 때문에 이런 급진적인 움직임을 지시할 정치적 권위가 더 이상 남아 있는지 의문이지만), 북한의 미사일은 남한을 목표 지점으로 옮겨갈 수 있다. 또 남한을 겨냥한 미사일 발사로 협박하면서 한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멈춰 세우려 할 것이다.


나는 현 상황의 변덕성과 위험성을 주목하며 나의 칼럼을 마무리하려 한다. 내심 이번 달 칼럼은 더 밝아지길 원했다. 실망한 독자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우리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우리에게 복잡한 질문을 던져주는 것과 별개로, 한반도 상황이 더욱 불안정해졌음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매우 힘든 시간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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