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예체능성적은 「엄마점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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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Q여사 (49) 는 아낄한 현기증을 느꼈다. 의식이 몽롱해지는 충격이었다.
『한학기에 한번씩 예·체능선생님들을 모시고, 저녁식사후헤어질때 차비나 마련하면 내신성적은 잊어버려도 된다는사실을 알려드리려 했어요』
지난해 3월초, 방과후였다. 서울강남의 공립×고교 (40학급) 교무실.
『내친김에 아는 사이니까 특별히 얘기하겠는데, 50만원정도 없는셈 치고 아이를 위해쓰시오』
이건 보약장사의 약값 흥정도, 복덕방의 부동산거래 장면도 아니다. 고교미술선생님이 학부모를 불러서 하는 말이다.
Q여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으로 한동안 눈앞이 캄캄했다.「세상에 이럴 수가….」
미술교사 Z씨 (58). 그는 뜻밖에 Q여사의 여고시절 은사이기도 했다. Q여사로서는 정말 뜻밖이었다. 강남A군(「17) 이 2학년이 되도록 학교라곤 처음인데다, 내신이 무섭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잘 모르던 터에 30년만에 만난 은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것이다.
『A군의 가정환경조사서를보다가 알게 돼 각별하게 생각하고 연락한 것이니 오해는 마오.』
Q여사가 머뭇거리자 Z교사는 다그치듯, 손해안되게 해줄테니 날짜나 정하라고 재촉했다.
난처한 상황을 적당히 얼버무린채 Q여사는 학교를 빠져나왔다. 남편과 의논끝에 학기마다 50만원이란 부담을 안고 예·체능내신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없었던 일처럼, 가부도 알리지 않은채 내버려뒀다. 그러다 1학기말 A군의 성적표를 받아보고서야 「이럴수가…」라는 또 한번의 충격에 몸을 떨었다. 1학년때까지만 해도 「우」 이상이던 미술·음악이 모두 「양」이었다.
그동안 선생님을 한번 모시자는 말을 해오던 A군은 성적표를 내팽개치곤 방문을 꽝하고 닫아붙였다. Q여사는 한참만에 정신을 가다듬어 아들의 등을 두들겼다.
『엄마가 학교다녀간 뒤였어. 미술선생님도 그랬지만, 음악선생님도 왠지 이상했단 말이야』 A군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몇차례나 「예·체능과목 점수는 엄마·아빠가잘해야 된다는데 한분이라도 한번 모셨으면 좋겠다」고 졸라대던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음악시간에 계이름을 부르거나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다른애들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틀린데만 지적했어. 시험때는 노래를 중간에서 그치게 하고, 그림 색상이 틀렸다고 야단을 쳤단말이야』
그러나 체육과 교련이 「수」인것은 뜻밖이었다.
『음악·미술선생님 눈치가 달라보여 체육·교련은 내가 수를 썼지 뭐』그제야 A군은 씩웃었다.
『상담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방과후 남았다가 만났어. 이담에 사관학교 갈 계획인데 점수를 잘 달라고 했지』
교련교사는 호감을 갖고 그 얘기를 받아들였고, 체육교사는 원래 호탕한데가 있어 통했다는 것이다.
Q여사는 속으로 크게 깨달았다.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일찌감치 음악교사와 미술교사를 찾았다. 그동안 집안일이 복잡해 못찾아뵈어 죄송하다는 핑계와 함께 봉투를 전했다.
『예·체능점수는 시험이 끝난 학기말이 아니라 학기초에 손을 써야 효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Q여사는 체험을 통해 「수」「우」「미」가 이미 학기초에 결정되어 뒤늦게 애를 써봐야 다음 학기는 몰라도 당장은 헛일이라는 것을 알게됐다고 털어놨다.『나중에 알고 보니 「수」는 물론 「우」 까지도 예능계선샘님중 한분이 미리 집으로 연락해 일정액의 성의표시여부를 확인하고 학기초에 미리 정해놨더군요』
국어나 영어·수학같은 일반과목은 그래도 필기시험으로 점수가 결정되고, 공개적으로 항의라도 할 수 있어 결과를 조작할 수는 없지만, 예·체능은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가 아니겠느냐고 우울해했다.
『오죽해서 아파트엄마들이 모이기만하면 「내신성적은 엄마점수」 란 말이 공공연히 나오겠느냐』 며 Q여사는 『어딘지는 모르지만 한참 잘못돼있는 것은 확실하며, 이대로는 안된다』 고 열을 렸다.

<김종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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