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주 동경특파원】일본 언론의 표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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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만철씨 가족이 일본 쓰루가 (돈하) 항구를 떠나 대만에 도착했던 8일 일본 주요 신문·방송들의 보도자세가 돌변했다. 청진호사건이 1면 머리기사로 등장한 것이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거나 신문 한 귀퉁이 기사로 처리해오던 일본 신문들이 9일에는 거의 동시에 김씨 가족의 한국 「이송」을 다시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일·북한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나섰다.
아사히(조왈)신문은 사설에서 11명이 북한에 갈 의사가 없었는지를 북한 관계자들이 다시 확인할 기회를 주었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어떤 신문은 11명의 한국망명이 강제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도했다.
사태를 보는 눈은 시각에 따라 다른 사상을 비춘다 .뉴스가치를 어떤 척도로 재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일본 언론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다. 그러나 정보를 전달하는 일본 언론의 자세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1명이 왜 북한을 탈출했는지, 그들이 어깨서 한국·일본 등 주변국가들에 대해 전혀 지식을 갖고있지 못한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 배경의 추적이 없으니 일본 독자들도 11명의 한국행을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휴먼 스토리라면 야단법석을 피우며 취재경쟁을 벌여온 게 일본 매스컴이다 .특히 주변국가의 인권문제라면 「선진적」 위치에서 필봉을 휘둘러온 터다.
그런데 1명도 아닌 일가족 11명이 「지상의 낙원」으로 선전돼온 북한에서 탈출해온 뒤 일본 언론은 북한 실상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했다.
김일성 사망설이 나 돈지 얼마 뒤인 작년 12월초 서방의 유수한 통신사들이 평양발로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도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숱한 일본 언론인들이 평양을 들락거렸으나 실상을 소개하는 글은 거의 싣지 않았다.
「지적수준」이 높은 일본 언론이 북한에 대해 계속 벙어리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자기네 이익을 위해 항상 표변하는 두 얼굴을 내미는 그들의 속성에 새삼 경계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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