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신안군 섬마을] "흑염소가 내자식이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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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심심하냐고? 흑염소가 자식이고 이웃인디 심심할 일이 있것어."

신안군 요력도의 작은 섬에 사는 김매화(72)할머니는 "흑염소에게 먹이를 주랴, 고추.참깨밭의 잡초를 뽑으랴, 하루 해가 짧다"고 말했다.

金할머니는 면적 2만1천여평의 섬에서 혼자 산다. 열아홉에 안좌도로 시집와 스물다섯에 이 섬으로 옮겨 왔다. 과수원을 일궈 보자던 시부모를 따라 들어온 것이다. 그게 벌써 47년이 흘렀다.

"그 때는 학교(한 학급짜리 분교)도 있었고, 파출소(지서 출장소)도 있어 사람 사는 곳이었제."

요력도 앞바다는 조수 간만의 차가 유독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는 옆에 있는 안좌도까지 걸어 건너갈 수 있다. 20분가량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金할머니는 거의 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별로 나갈 일이 없기 때문이란다. 은둔자처럼 섬에서 흑염소 20여마리를 기르고, 채소를 가꾸면서 조용히 살고 있다.

金할머니는 사진찍기를 한사코 사양했다. 섬에 혼자 사는 일이 대단한 일도 아닐뿐더러 육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행여 누가 될까 하는 생각에서다.

金할머니는 3남2녀를 뒀다. 자녀들은 모두 서울.광주 등에 나가서 산다. 아들과 딸들이 같이 살자고 성화지만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20여년 전 먼저 떠난 남편과 시부모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대신 자식들은 명절과 휴가 때면 섬에 들어와 노모와 함께 지내고 간다.

큰아들이 설치해 준 소형 발전기가 있어 전깃불을 켜고, 텔레비전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발전기 소리가 시끄러워 낮에 잠깐 돌려 지하수를 뽑는 데만 쓰고 밤엔 호롱불로 생활한다. 그나마 전화가 있어 아들.딸들과 자주 통화할 수 있는 게 즐거움이다.

요력도=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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