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실천 - 고문 안 하기 의지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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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 고문수사 추방을 위해「획기적」이라고 할만한 조치들이 어제 치안본부장에 의해 제시됐다.
국립경찰 창설이래 헤아릴 수 없는 조치가 쏟아져 나왔지만 이번처럼 우리의 관심을 끈 적도 일찍이 없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경찰업무 쇄신방안」은 수십년에 걸쳐 고질화되고 타성이 되었던 경찰의 불법수사를 제자리로 옮기겠다는 내용이다.
경찰업무 쇄신방안으로 내놓은 영장없는 강제동행과 구금금지는 말할것 없고 증거수집 후 체포, 밀실수사금지 등도 따지고 보면 형사소송법이 그렇게 하도록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그 엄연한 법을 제쳐놓고 탈법과 불법수사를 당연한 것처럼 일삼아 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범법행위가 처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벌은 커넝 실적이 좋다고 유능경찰관으로 칭찬을 받고 때로는 표창과 l계급특진의 기회가 주어져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경찰로서는 이번 조치가 하나의 「혁명적 조치」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획기적 조치들이 얼마만큼 현실로 구체화되겠는가.
이 기회에 경찰이 다짐해야할 것은 계획보다 실행, 백마디 말보다 조용한 실천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입으로만 끝나는 일이 만의 하나라도 생긴다면 어느 누구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탈법수사가 체질화된 경찰이 하루아침에 오랜 관행을 깨고 합법수사로 전환하게 되면 적지 않은 불편과 애로가 뒤따를 것이다. 심증이 가는 용의자가 대로를 활보하는 모습을 뻔히 보고도 강제연행을 못했을 때의 심정은 이해함직도 하다. 그러나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억울한 단한 사람을 낳게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자세의 견지가 경찰의 본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먼저 법을 지키고 준법수사를 하겠다는 마음가짐과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불법수사는 영원히 극복되지 않는다.
이번에 경찰이 내놓은 「경찰업무쇄신방안」은 지금까지 여론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대체로 수용한 내용이지만 이 정도로서는 업무쇄신이 보장되리라고 믿지 않는다. 이 방안이 보다 완벽하게 실천에 옮겨지자면 보다 구체적인 각론이 병행해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로 수사환경부터 대폭 개선해야 한다. 증거수사가 가능하게 수사기술과 장비도 향상시켜야하고 무엇보다 경찰관의 자질을 높이는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인권보장의 장전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의 내용과 정신을 숙지하고 있는 경찰관이 과연 몇 명이 되는가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또 치안본부에 두고 있는 「특수」자를 붙인 별동대같은 수사기관을 대폭 정리하고 이름 그대로 수사정책기구로 모습을 바꾸어야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2건의 고문치사사건이 일선 경찰서가 아닌 치안본부에서 모두 발생했다는 것은 그 동안 이들 기관의 작페가 어떠했는가를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둘째는 견제 기능의 강화다. 앞으로 불법수사 경찰관을 연대 처벌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손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자체감찰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이른바 「경찰총수」까지도 박군사건 수사를 발표하면서 「지나친 집무의욕」운운하고 물러가는 자리에서도 박군의 죽음은 언급 없이 「내 부하를 잡아넣은 것이 가슴아프다」고 한 경찰의 사고가 밑바탕에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현행형법과 특정가중처벌법은 불법수사는 물론 이를 눈감아준 행위까지도 무거운 징역형으로 다스리도록 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사문화 되다시피 했다.
이런 점에서 경찰자체는 물론 검찰도 전담기구를 설치, 감시·감독기능을 강화해야할 것이다.
이밖에 코걸이 식의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대폭 개정하고 즉심위배자조차 보호실에 구금하는 「보호실」제도의 존치문제도 차제에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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