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에 이름적어 날리면 재액 자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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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음력으로 새해의 첫날인 원일루터 보름날인 상원에 이르는 기간중 우리에게는 많은 민간품속이 있었다. 그중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도 있고 아주 없어진 것도 있으며 사라져가는 과정에 있는 것도 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김윤경의 『연중구속』 등을 통해 정월전국 각지방의 풍속을 살펴본다.
정월풍속은 새해를 맞으면서 그해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과 행복·건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많다. 농경사회에서는 그해 농사의 잘되고 못됨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던 만큼 풍년을 예지하려는 심리가 드러난 품속이 많은것은 당연하였다.

<원일풍속>
남녀가 다 새옷을 갈아입는데 이를「설빔」이라 했고 설음식먹는 것을 세찬이라 했다. 술을 마시는 것을 세주라고 했는데 세주는 덥히지않았다. 이는 곧 봄을 맞는다는 것을 뜻했다. 멥살이나 찹쌀가루를 팥으로 켜를 깔아 찐 것을 「시루떡」이라 하여 신에게 빌때 쓴다. 제사를 지낼 때는 꼭 시루떡을 쓴다.
남녀가 1년동안 머리 빗을 때마다 끊어져 내린 머리를 모아두었다가 원단전날 황혼에 문밖에서 불사르는데 이는 염병을 물리치려는 뜻이다.
이날 중들은 북을 들고 거리로 들어와 치면서 돌아다닌다. 이를 법고라 했다. 중은 떡 하나를 주고 속인의 떡 두개를 받아가는데 중의 떡을 바꾸어다 어린이에게 먹이면 마마를 피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는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성밖에서했다.

<대보름 풍속>
보름전날에 짚을 독같이묶고 벼·기장·피·조들의 이삭을 꽂고 면화를 집곁에다 줄을 늘이어 매어놓는다. 이를 화적이라 했다.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또 보름전날밤에는 짚으로 인형을 만들고 돈을 그 머리속에 넣어 저녁에 거리에 버렸다. 이를 제웅이라고 불렀는데병을 막겠다는 뜻이 담겼다.
서울에서는 보름날 새벽에 종로십자거리의 흙을 가져다가 집안 네모퉁이에 묻고 부엌에 붙였다. 재물이 모이라는 뜻이다.
호두나 은행따위를 깨물며 「일년 열두달 무사태평하고 부시럼 나지 말아라」고 말하는데 이를 「부스럼깨물기」라 했다.
과실나무 가지사이에 돌을 끼워 두기도 했다. 과실이 많이 열리기를 기원한것.
겨울부터 아이들은 연을 날리다가 보름날 저물때 띄워보낸다. 띄워 보낼때는 연뒤에다 집안식구 이름을 적고 재액이 소멸하라고 쓴다.
보름날 황혼이 되면 홰를 들고 높은 언덕이나 산으로 달맞이간다 .먼저 보는 사람이 아들을 낳거나 돈을 벌거나 장가를 들게된다고 좋아했다.
서울에서는 이날밤 종로의 저녁종소리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흩어지면서 여러 다리로 다리를 밟으려 왔다갔다했다. 이를 다리밟기(답교)라 했는데 다리밟기를 하면 다리병에 걸리지않는등 건강해진다고 한다.
삼문밖사람과 애우개(아현) 사람들이 떼를 이루어 만리재에서 서로 욕설하다가 돌을 던지고 나중에는 백병전까지 했다. 삼문밖이 이기면 경기도가 풍년들고 애우개가 이기면 전국 각도가 풍년들게 된다고 한다.
평안도에서는 보름전날밤에 닭이 울기를 기다려 집집마다 바가지를 가지고 먼저 우물의 깨끗한 물을 길어가려했다.
이를 용알건지기라 하여 먼저 길어가는 이가 그해농사에 성공한다했다. 또 콩열두개에 각각 열두달을 표시하고 끈으로 묶어 우울물에 담가 두었다가 새벽에 꺼내어 콩이 붇고 붇지 않음을 보아 그 달의 비오고 가뭄을 예측하였다.
호서지방에서는 횃불놀이와 줄다리기풍속이 있었다. 이기는 편이 풍년을 맞는다.
이같은 농사의 풍년을 비는 풍속은 진지했고 풍흉을 점치는 마음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깔려있다.
안동에서는 보름날밤 부인들이 밤에 성밖에 나와 쭉 엎드리고 그위를 한 어린 여인이 걸어가는 풍속이있다.
풍기에서는 읍의 관리가 검은 소를 거꾸로 타고다니는데 이는 복을 비는것으로 알려겼다.
정초부터 보름까지 여인들은 널뛰기 놀이를 한다. 두어자 높이로 공중에 솟아올랐다가 내려오며 옷고름·치맛자락을 나부끼는 것이 보기 아름답다. 여성의 운동으로서는 가장 힘차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유구국의 풍속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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