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개혁안 의미|보수세력과의 대결서 승리 시사|내년 당 대회 때 "개혁"성패 판가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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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개혁의 차르』(차르는 제정러시아의 황제)라고 일컬어지는 「고르바초프」가 집권2년만에 소련권력체제를 구조적으로 변혁시킬지도 모를 개혁안을 내놓았다.
「고르바초프」의 공산당간부 및 공직자선거개혁안은 비단 소련뿐 아니라 소련영향권 아래에 있는 다른 모든 공산국가의 권력체제·선거제도에까지 파급될 수 있다는 데서도 획기적인 조치다.
다른 모든 공산국가들도 소련의 예에 따라 모든 선거는 당에서 지정한 1인 단독후보를 추인하는 형식상의 선거제도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2년 남짓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집권한 이래 이른바 「글라스노스트」(Glasnost=공개주의)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온「고르바초프」의 개혁의지는 이번 제안으로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당 관료의 부패추방, 경제부진타개 등을 목표로 한 그의 정책은 그 동안 당내보수파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몇 차례 주춤하기도 했으나 이제 이런 개혁조치를 내놓을 수 있는 점으로 미루어 상당한 지지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보수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지지기반을 확보했다는 증거는 특히 이번 당 중앙위연설에서 「브레즈네프」집권시대를 『부패와 위기의 시대』라고 규정함으로써 보수세력을 통박한데서도 엿 볼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은연 중「브레즈네프」격하운동을 벌여오기는 했으나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브레즈네프」집권기간인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혼란』을 지칭한 일은 없었다. 이는 1956년 비밀회의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격하연설을 했던 것과 비견할만한 「스탈린-브레즈네프」유의 보수파에 대한 공격이라 할만하다.
「고르바초프」는 이러한 개혁조치를 취하기 위해 그 동안 보수파의 만만찮은 저항을 차례차례 분쇄해왔다.
반체제물리학자「사하로프」의 유배해제,「브레즈네프」시대의 상징적 존재였던 정치국원 「쿠나예프」카자흐공화국 공산당 제1서기의 해임 등은 보수세력과의 대결에서 그가 승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보수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음은 개혁조치를 발표한 이번 당 중앙위회의 소집이 한달 가량 늦춰진데서 알 수 있다. 1년에 두 번씩 열리는 중앙위 전체회의는 12월에 열리는 것이 관례였고 보수파를 대표하는 당내서열 제2인자인 정치국원 「리가초프」도 중앙위 12월 소집을 공언해왔었다.
중앙위소집이 이처럼 한달 가량 늦춰진 것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안을 둘러싸고 크렘린핵심세력간에 논쟁이 치열했음을 의미하고 보수파의 저항이 분쇄됐음을 뜻하기도 한다.
「고르바초프」가 내년에 임시당 대회 소집을 요구한 것은 개혁정책추진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5년만에 한번씩 소집되는 소련공산당대회가 85년에 열린 지 채 2년이 못돼 임시당대회를 소집한 것은 현재의 당 지침으로는 개혁정책을 추진하기에 미흡하기 때문이다.
당 정책의 최고결정기관인당대회는 정례대회에서 인사·정책에 관한 모든 지침을 마련하지만 임시당대회에서는 정책에 관한 지침만 마련할 수 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개혁정책의 최종적 성패는 그가 요구한 내년의 특별당대회 소집이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되는가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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