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언론의 「두얼굴」|"북한탈출일가" 문제 애써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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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진호망명사건을 보도하는 일본언론의 자세는 무관심·무책임·왜곡·편견보도의 극치라해도 지나치지 않을것 같다.
일가친척 11명이 생명을 걸고 북한을 탈출, 일본의 조그만 항구에 도착했다는 것은 국가의 이익이나 이념의 차원을 넘어 자유의 존귀함을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다.
그런데 웬만한 한일관계 일이라면 미주알 고주알 따지고 들던 일본언론이 예외적으로 「신중」하다.
일본의 대표적 신문임을 자처하는 아사히신문은 21일 망명사실이 보도기관에 알려진 뒤에도 만하루 침묵을 지키고 있다 23일조간사회면에 눈에 보일듯 말듯한 1단기사로 일본 밀입국으로 단정하는 보도를 하고있다.
그리고나선 같은날 석간에「북조선의 배를 공해에 내보내면 한일관계 악영향」이란 제목으로, 다음날인 24일 석간에서 「빠른 송환을 북조선이 요구」란 제목으로 남북한의 반응을 모두 1단기사로 전했다.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아사히신문이 청진호망명사건을 다룬것은 사건발생후 6일동안 이것이 전부다.
일본기자들은 쓰루가현장이나 외무성관리를 통해 수시로 설명을 듣고 있다. 쓰루가에는 수십명의 한국기자들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이들이 얻어들을수 있는것보다는 훨씬 많은 사실을 일본신문들은 알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런데도 일본언론들이 이사건을 외면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정부의 의도와 암시를 충실히 따르는 몸에 밴 일본언론의 속성때문이다.
일본언론이 국내문제에는 사정없이 칼을 휘둘러 수상을 그자리에서 끌어내리기도 하지만 대외문제에는 길들여진 앵무새처럼 정부의 입장을 싸고돈다는것은 잘알려진 얘기다.
이번 청진호 망명에 대해서는 초기단계에 이미 일본정부로부터 보도를 자체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일본정부와 일본언론에 의해 의도적으로 일본국민들뿐아니라 세계의 이목으로부터 차단하려 한다고 볼수 밖에없는 태도다.
자국의 이익을 저울질하는 마당에 인도적처리를 하라는 세상의 여론과 압력을 받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약삭빠른 두얼굴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확인하면서 망명자가족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한국으로서는 경계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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