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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여야 대표 빨리 만나 대연정 방안 만들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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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째 대국민 사과 담화에도 국가 리더십 붕괴 사태가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 “2선 후퇴” 등 요구 강경
국민의당은 영수회담에 유연
“박 대통령, 합의안 나오면 수용을
야당도 선후·조건만 따지다간 역풍”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는 20만 명 이상(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리더십 위기 속에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8일 미국 대통령선거(현지시간) 결과가 한국의 경제·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지만 국회는 6일 ‘여야 영수회담 개최’가 먼저냐, ‘대통령의 2선 후퇴 및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가 먼저냐를 놓고 힘겨루기만 계속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가 영수회담을 해서 정국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야당이 주장하는 별도 특검에 (박 대통령이 이미) 유연한 입장을 밝혔고, 거국내각은 (여당이 당론으로) 수용했고, 청와대 참모진 개편도 이뤄졌고, 주요 인사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라며 “이제 야당이 (영수회담에) 화답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진정성도 없고 무례하기까지 한 ‘꼼수 영수회담’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민주당이 제시한) 최소한의 요구사항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 없는 한 의미 있는 회담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미 네 가지를 선결조건으로 걸어놓은 상태다. 추미애 대표는 4일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 ▶검찰 수사 외에 별도의 특검 실시 ▶최순실씨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선언 등을 요구했다. 네 가지 요구를 받아들여야 영수회담에 응할지 말지를 검토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한편으론 장외투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6일 전국 당원보고대회 형식의 장외투쟁을 오는 12일 개최하겠다고 예고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 47명은 이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가 합의할 국무총리에게 전권을 넘기고 국정에서 손을 떼겠다고 즉각 천명할 것을 박 대통령에게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47명 중에는 86(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그룹이 주축인 ‘더좋은미래’의 이인영 의원, 고 김근태 전 의원을 따르던 민평련계의 우원식 의원 등이 포함됐다. 국민의당은 ▶김 후보자 지명 철회 ▶박 대통령 탈당 ▶여야 영수회담 개최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달리 선(先)영수회담 개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이다. 이용호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과의 회담을 정식으로 제안한다면 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여야의 선후(先後) 논쟁을 비판하면서 영수회담은 열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가 헌정 중단은 안 된다는 공감대 아래 대통령의 명예로운 2선 후퇴 과정을 논의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은 야당과의 물밑 대화를 통해 새누리당 탈당과 함께 국회가 구성하는 내각을 추인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야당도 영수회담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대통령의 정당성이 손상됐을 때 국민이 선출한 국회가 국정 책임을 맡아야 한다”며 “청와대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여당의 역할이 중요하고, 야당도 상황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대통령 직선제를 전격 수용했던 ‘6·29 선언’과 같은 정치적 결단이 다시 한번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도 나온다. 독일 전문가인 한우창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는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촛불을 드는 상황에서 무엇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여야가 이번 기회에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 독일식 ‘대연정 방안’을 논의하고, 박 대통령은 ‘제2의 6·29 선언’을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대연정 논의가 진정한 사태 수습의 해법”이라며 “야당도 조건만 계속 내세우다간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세현·위문희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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