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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대기업 회장 독대 때 모금 압박 여부가 핵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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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수사를 자청하면서 헌정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현실화되고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 조만간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검찰 수사는 물론이고 특검 수용 의사까지 밝히면서다. 이로써 헌법 제84조 대통령 불소추 특권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현실화되면서 검찰은 수사 시기와 방법을 놓고 고심 중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 방법과 시기는) 현재 수사가 진행되는 방향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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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선 박 대통령이 ‘좋은 뜻’에서 시작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건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수사 마무리 직전에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최씨의 구속 만기일인 이달 22일을 전후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조사 방식은 청와대 직접 방문 또는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 방문 조사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 청와대 관계자 압수수색서
총수 7명과 개별 회동 사실 확인
안종범 “대통령 지시로 모금” 진술
대통령 직권남용·강요죄 적용 근거
22일께 방문·제3장소 직접조사 유력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BBK 주가 조작 연루’ 의혹 사건과 관련해 서울 시내 한정식집에서 당선인 신분으로 3시간 동안 정호영 특별검사팀의 방문 조사를 받은 사례가 있다. 박 대통령의 상황은 다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재임 중 계속 이뤄졌고 박 대통령의 직접 개입 정황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는 “(내용에 따라 달라) 신분을 (현재로선) 특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 과정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지난 3일 구속된 최순실(60·구속)씨와 4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그리고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정호성(47)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모두 박 대통령의 사람들이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이들의 수상한 행적은 박 대통령을 주요 관련자로 지목하고 있다.

검찰이 박 대통령에게 조사할 내용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을 지시하거나 직접 요구했는지, ▶청와대 문건을 최씨에게 직접 또는 청와대 직원을 시켜 전달했는지다. 박 대통령은 개입 정도에 따라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두 재단 출연금에 대한 모금이 시작되기 전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검찰이 밝혀야 할 핵심적 대목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미르재단이 탄생하기 3개월 전인 지난해 7월 24일 삼성 등 대기업 총수 17명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한류 확산을 위해 기업들이 도와야 한다”며 “재단 형태를 만들어 민관 합동으로 지원하면 좋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날 오후와 25일 이틀에 걸쳐 박 대통령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7명의 대기업 총수를 개별 독대했다. 검찰은 이 내용을 지난달 29일 청와대 관계자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관련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검찰 수사대로라면 대기업 모금은 대통령에게서 시작된 셈이다. 경우에 따라선 대통령에게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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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 대통령은 4일 담화에서 자신은 재단 운영·모금 비위 의혹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를 두고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특수통 출신인 (최재경) 민정수석이 방어논리를 담화문에 녹여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글=오이석·송승환·서준석 기자 oh.iseok@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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