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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 커지는 현대상선, 숙제는 경쟁력 키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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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정부의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이 발표된 후 현대상선이 발 빠르게 후속조치에 착수했다. 임원 전체가 참석해 마라톤 회의를 연 데 이어 국내외 고객·화주들에게 회생 의지를 담은 편지를 발송했다. 6조5000억원에 달하는 정부의 지원책을 발판 삼아 ‘국가대표 해운사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유일 해운사’가 된 현대상선의 글로벌 시장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지원 발판 삼아 재도약 전략
‘2M 동맹’ 가입 세부사항 협상 중
“선박 과잉시대에 확장은 안 맞아”
전문가들 영업이익률 개선 강조

3일 현대상선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1일 오전 7시 유창근 사장 주재로 전 임원이 참여하는 전략회의를 열었다. 정부 대책에 기초한 컨테이너선 발주, 활용도 높은 터미널 인수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현대상선은 이런 계획을 바탕으로 고객·화주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2일자로 국내외 고객과 화주들에게 ‘고 투게더(Go together!)’란 제목의 편지를 발송했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회의에서 나온 현대상선의 경쟁력 강화 계획을 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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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이번 해운업 강화 방안에 대해 사실상 현대상선 키우기가 핵심이라고 평가한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선박회사(가칭) 설립에 1조원을 투입하며 캠코의 선박펀드 규모를 애초 1조원에서 1조9000억원으로 늘려 해운사의 용선료 등 비용 부담을 낮추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현대상선이 소유권을 가진 23척을 선박회사가 매입해 다시 빌려줌으로써 현대상선에 우회적으로 1조원의 자본을 공급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현대상선은 글로벌해양펀드를 이용해 인프라를 확대하는 데도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은 현재 한진해운의 아시아, 미주 노선 유무형자산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롱비치터미널 등 한진해운이 소유한 항만터미널이나 초대형 선박 등에 관심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톱10 선사들의 독과점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세계 1위 해운업체 머스크의 쇠렌 스코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현지시각) “상위 3개 업체의 시장 점유율 확대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머스크는 세계 1~3위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1998년 17%에서 2017년 39%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10위권 밖에 있는 선사들의 시장점유율은 1996년 57%에서 2017년 31%로 급감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현대상선의 글로벌 순위는 13위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은 해운 얼라이언스(동맹) 가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2M 얼라이언스’ 가입을 위해 머스크, MSC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황이다. 현재 항로·물동량 등 세부 사항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불리한 조건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 줄다리기 협상이 계속 되고 있다”고 말했다.

2M의 변심 가능성도 있다. 당초 2M은 현대상선의 합류를 통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북미노선의 점유율을 높인다는 의도였다. 현대상선이 2M에 합류할 경우 북미노선 점유율은 17~18%에서 22%로 훌쩍 뛴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머스크가 해운동맹보다 인수합병이 경쟁력 강화에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1일(현지시각) 머스크의 대변인은 블룸버그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인수합병은 해운동맹을 통해 해결이 불가능한 비용절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해운 물류대란이 터지자 미주노선의 화주들이 머스크와 MSC 등에 일감을 맡기면서 현대상선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상선이 정부의 지원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보다는 내실경영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종길 성결대 교수(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정부가) 돈을 꿔줘 선박 수를 늘린다고 경쟁력이 커지는 게 아니다”라며 “현 시점에선 덩치를 키우기 보다는 영업이익률 개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현대상선은 머스크, CMA CGM, 하팍로이드 등 올해 2분기 적자를 낸 해운사 중 영업이익률이 가장 낮다. 부산항만공사 항만위원회 위원장인 전준수 서강대 석좌교수(경영학) 역시 “선박 신조 지원 규모를 늘린다는 계획은 선박 과잉 시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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