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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고스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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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조시대 화가 김득신의 풍속화에 『밀희투천 (투전) 』이란 작품이있다. 제목 그대로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노름을 하는 그림이다.
망건을 쓴 네 사내가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며 투전노름에 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밤을 지새운듯 웃목에 물려놓은 술상하며, 투전꾼이 허리에 차고 있는 돈주머니, 그리고 담묵으로 어둡게 칠한 방문은 금방 어떤 염탐꾼이 나타날듯한 분위기다.
투전이 우리나라에 보급된 것은 조선조 숙종때 부터다. 그전까지는 이런 본격적인 도박이 없었다.
당시 장희빈의 인척이며 당상통역관이었던 장현이란 사람이 처음투전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북경을 왕래한 그의 직책으로 미루어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 틀림없다.
이 투전은 영조때 크게 성행, 서울은 물론 시골 구석구석까지 퍼져 전국 도처에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심지어 살인하는 사례까지 생겼다.
그래서 나라에서도 골치를 앓고 엄한 단속령을 내렸다. 투전꾼들이 지하로 스며든 것은 물론이다. 김득신의 투전 그림은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다.
당시 이리교란 선비는 이같은 투전의 폐해를 가리켜 『도둑보다 더 큰 해를 끼친다』 고 한탄했다.
투전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화투다. 원산지는 포르투갈이지만 일본에서 변형, 19세기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이 정세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화투가 옛날 투전 못지않게 극성을 떨며 열병처렴 전국에 번진지는 이미 오래된 얘기다. 더구나 화투는 투전과 달리 대량 생산, 대량 보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집마다 화투 한목 없는 집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그 놀이 종류와 방법에 있다. 특히 요즘 가장 크게 성행하는 「고스톱」은 지역과 장소, 계층과 직업에 따라 그 놀이의 룰이 다르다. 룰이 다를뿐 아니라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룰이 「창안」되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룰때문에 드디어 살인까지 부른 작태가 일어났다.
어떤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고스톱의 종류는 50가지가 넘는다. 그중에는 어느 코미디언의 이름을 따붙인 고스톱이 있는가 하면, 네로 고스톱·통수 고스톱·통통통고스톱등 세태를 반영하는 별난 이름이 다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놀이 자체가 점점 파행(파행)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같은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공감대가 없고, 가치관이 혼미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일정한 룰이 없다는 뜻이다.
「망국노름」고스톱을 하루속히 추방하고 건전한 놀이문화를 정착시킬 묘방은 정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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