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백두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덕이의 일행이 하얀 이리의 숙영지를 떠났을 때에 다른 일대가 많은 곡물과 가축을 몰고 엇갈려 지나갔다. 물건과 짐을 나르는 종이며 가축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덕이는 함께 끌려가던 젊은이에게 물었다.
저들은 어디로 갑니까?
아마, 큰한이 사는 조양(조양)으로 갈테지.
조양이 어디쯤이오?
강을 건너 동으로 백여리를 올라가면 거기가 동호족들의 대읍이 있는 곳이지. 여기는 천호가 셋이 모인 소읍이다. 각 소읍의 큰들이 모여서 한을 뽑는다. 자네는 어디서 왔나?
나는 저 돌무지의 갈래강에 살던 청구족 사람이요. 동호의 가을 걷이에 잡혀왔어요.
허어, 그러면 밝종족의 사람이군. 동호와 밝은 전에는 사이가 좋았지. 그런데 초원 지대에 다른 강한 부족들이 일어나 이들을 자꾸만 동쪽으로 밀어내고 있거든. 그로부터 동호족은 남쪽에 흩어져 사는 밝종족의 변방 부족들을 덮치며 근근이 살아간다네. 나는 유(유)족이야. 여기서 얼마 멀지 않아.
우리를 예와 맥족의 대읍으로 끌고 간다는데 어찌 할건가요?
예와 맥은 동호와 가장 가까운 부족이라네. 아주 용맹스럽지. 특히 그들은 큰 활을 잘 쏘아. 동호들도 그들을 두려워 한다구. 아마 우리는 그들 큰들의 하호(하호)가 될게야. 큰은 한의 아래있는 높은 사람들인데 도큰 말큰 개큰 소큰 등이라고 부르지. 지금 사방에서 서로 작은 마을이나 읍을 하호로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네.
거기 남은 사람들은 어찌 되는 거지요. 나는 거기다 안해를 남겨 두고왔어요. 마을 사람들두 거기 잡혀 있어요.
젊은 유족 사람은 아는 것이 많았다. 그는 잠시 대답을 않고 있다가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이젠 자네가 철 모르고 살던 마을은 땅에서 사라진거야. 다시 태어났다구 생각해야 되네. 운이 좋으면 호장이 될수도 있겠지. 동호족들은 농사를 아는 부족이 많이 필요하지. 그들은 우리와 섞이기를 원한다. 아마 자네 안해는 어느 동호족이 차지할게야. 자네 이쪽으로 뽑힌 걸보면 그들이 자네를 똑똑하다구 생각한 모양인걸. 곡식을 많이 바꿀수 있다고 여겼겠지.
나는 갈래 마을 다섯 동네의 우두머리 큰돌의 맏아들이예요. 덕이라구 합니다.
그래, 호장의 아들이군. 나는 다루라고 한단다. 손재주가 좀 있지. 하얀 이리에서 한 해를 살았다. 거기 사는 동안에 창도 만들고 방패도 만들어주고 했지. 저들은 나를 곡물과 바꾸려고보내는거야. 차라리 동호의 개가되어 사느니 보다는 예에 가서 하호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다가 그는 웃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것 봐, 저 어리석은 놈들은 구리를 저희들 숙영지에 산처럼 쌓아 두고도 그것을 녹여서 물건을 만드는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다. 예와 맥에 내주어 곡물이나 바꿔온다. 나는 숨기고 있었지만 구리를 녹여낼줄 알아. 내 이름이 다루인 것은 부족 사람들이 우리 가족에 붙여준 이름이다. 나는 밝종족의 무리에 가기만 하면 금방 부자가 될수 있어.
덕이는 주먹을 쥐며 으르릉 거렸다. 나는 우리 종족의 젊은 전사들을 꼭 모아서 선비를 이룰테요. 그래서 작은 마을들을 통합하고 큰 세력을 이루어 동호를 쫓아내고 마을 사람들과 안해를 되찾아 오겠어요.
선비라고… 청구의 변방에 살던 사람이 그건 어떻게 아니? 나두 너만 했을적에 선비의 수행을 한적이 있어.
조선족의 젊은 전사들을 만난적이 있어요.
다루가 말했다.
조선족은 개명한 부족이지. 강하고 지혜가 많다. 나도 그들을 여러번 만난적이 있어. 너는 그리로 갈 생각이냐?
덕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금은 안돼요. 마을과 식구들을 모두 잃고 초라한 몰골로 그들을 찾아갈 수는 없어요. 처가가 있는 말모루에도 안갈거예요. 예 맥의 땀에 가서 일어나 보일테예요.
덕이와 다루는 행군기간에 아주 가까와져서 형제처럼 되었고 덕이는 다루에게서 낯선 고장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들은 동호와의 접경에 있는 예족의 읍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기에는 말모루나 갈래와 비슷하게 읍의 외곽에 돌담을 둘렀고, 풀 이엉과 사방에 기둥을 세.운 반 움집 모양의 집들이 줄지어 있었으며 그중에는 굵고 고른 통나무로 엇갈려 짜올린 큼직한 귀틀집도 보였다.
사람들은 거의가 가죽옷 대신 베옷이나 갈옷을 입었으며 비단옷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덕이는 사방이 반듯하고 길이 똑같이 고르게 뻗어나간 모양이며 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머리를 반듯이 빗어 올리고 그 외에 단정하게 건을 쓰고 있었다. 예에서는 진작부터 삼과 뽕나무를 심어 가꾸었고 누에를 길러 실을 뽑을줄 알았다. 예의 말과 맥의 대궁(대궁) 은 유명하여 예에는 일찌기 유목생활을 벗어났건만 남녀노소가 말 타기에 능숙하였고 맥의 활은 사람 키의 절반쯤 되는 강궁으로 화살에 독을 묻혀 대로 치명상을 입힌다고 하였다. 또한 그들의 기마술과 궁술은 대단하여 마상에서 짐짓 패하여 달아나는 체 하면서 몸을 돌이켜 뒤로 쏘는 급사에 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법은 조선도 비슷하였으나 조선의 경보병은 활과 장창을 함께 쓴다고 하였다. 이 지역에서의 범 사냥은 대단히 장쾌하여 수십마리의 범을 살진에 몰아 넣어 잡았다.
예와 조선의 호피는 인근 이민족들이 특산물로 여기는 진품이었다. 그들은 호랑이 어금니로 목걸이를 만들고 호피로 갑옷과 방패를 장식하며 또한 꿩의 깃으로 장식한 호피의 관모는 귀족들이 즐겨 썼다. 예의 고장도 대개는 동호와 비슷하여 심장 백장 천장을 다스리는 호장이있었고 호장 가운데 호가 마가우가와 같은 큰이 있으며 그 외에 족장인 큰한이 부족 모임의 머리를 맡았다. 호장 아래에는 부자인 호족과 평민 하호와 그 아래 천예인 종의 계급이 있었다. 종은 외지의 싸움에서 사로잡힌 피정복민이거나 죄를 저지른 자들 또는 어릴때부터 부모를 잃고 연고가 없는 자, 또는 빚을 지거나 가산이 적몰하여 자기 소유의 재산이 없는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종 가운데서도 하호가 되는 자들은 평민들처럼 집단의 일터에 식솔을 데리고 살면서 공물을 바치면 되었으며 가내 노예로 팔려갈 적에는 부자나 귀족의 집에서 부림을 당하였다.
가내 노예들중에는 스스로 노력하여 전사들의 우두머리가 되거나 다른 하호를 감독하는 자가 되어 신분을 벗어나는 자도 있어서 평민과 하호와 종이 큰 구별은 없었다. 어쨌든 부지런히 일하여 호장에게 공물을 바치고 자신의 것을 마련해야 되는 것은 평민이나 하오나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덕이에게는 모두가 낯선 일들이었다. 갈래 마을이나 처가가 있는 말모루에서는 물론 우두머리가 있어 부족회의를 주재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할 권한이 있었지만 모두가 노력하여 함께 먹고살았으며 남의 것을 공물로 빼앗거나 혼자서 너른 땅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을 부려서. 그 수확물을 모두 자기 것으로 하는 자들은 없었던 것이다. 덕이가 길에서 본대로 돌담으로 둘러친 읍의 바깥에는 조와 기장과 피와 콩을 심었다가 거두어들인 잘 정돈된 밭이 까마득하게 먼 들판의 끝에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말과 소는 각 집집의 외양간마다 들어 있었다. 읍의 너른 마당에는 섬에 넣은 곡식이 그득그득 쌓여 수레로 운반되고 있었다.
먹고 남은 것이 많으므로 사람의 욕심은 더욱 커지고 그 남은 것을 가지고 다른 것들을 만들어 남의 마을이나 부족의 당과 사람을 빼앗고 잡아다가 일꾼으로 부리게 되었던 터였다. 덕이의 아버지 큰돌도 몇해에 한번쯤 사소한 싸움을 벌여 다른 고장에서 일꾼을 잡아오는 적이 있었으나 몇해를 넘지 못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내곤 했던 것이다. 갈래 마을을 고만한 생활로 유지하는 것이 사람의 살림에 알맞는 일이며 덕이가 대처를 선망하고 조선의 부와 개명한 소문을 부러워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화를 냈던 까닭을 덕이는 뒤늦게 깨달았다. 역시 갈래마을 그의 고향살이가 가장 살기 좋았고 행복한 세월이었음을 덕이는 알게 되었다. 하늘과 사람과 땅이 함께 연결되어 있는 옛말 그대로의 세계로부터 덕이는 그 위대한 세가지가 조각조각 따로 떨어진 죄 많은 세계로 내던져진 것이다.
덕이의 일행은 읍의 가운데에 있는 한마당으로 들어 갔다. 사방에서 교역하러 온 부족들이 저마다 온갖 물건들을 가지고 몰려들었다. 소 말 양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은 물론이요 옷감 곡식 모피 옥 건어물 소금 큰 자갈돌만한 맥의 밤과 대추, 고죽에서 온 종자 좋은 씨앗, 발과 숙신의 붉은 구슬, 동호의 한혈마, 고기와 털을 함께 쓰는 산융의 양, 그리고 조선에서 온 동기와 향로등의 물건들이 사방에 그득하였다.
동호를 상대로 하는 상호(상호)들이 나와서 그들이 가져온 물건과 종들을 살폈다. 덕이와 다루는 읍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천호강의 상호가 뽑아 주어 그를 따라가게 되었다. 동호에서 들여온 구리돌이며 모피를 가득 실은 수레를 몰아 가는데 벌써 그들의 상전이 사는 마을에 가까이 왔는지 부녀자들이 떼지어 움집 앞에서 절구질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을 안에는 창고가 여럿이었고 동검을 차고 장창을 든 전사들이 곳곳을 수비하고 있었다. 말을 매어둔 목책도 따로 지었는데 말이 백여필이나 되어보였다. 덕이와 다루와 그밖의 대여섯의 노예들은 상호의 앞에 서서 몇 가지의 심사를 받았다. 몸은 건장한가, 손과 발은 멀쩡한가, 이빨은 튼튼한가, 나이가 몇인가, 특별히 자신있는 일이 있는가 하는 따위였다. 다루의 차례가 되었다.
유족입니다. 이름은 다루, 무기나 농구나 다 만들줄 알고 구리를 녹일줄 압니다.
상호가 기쁜 얼굴이 되었다. 동호족은 그런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구나. 아주 참 잘왔다. 너는 종이 될 필요는 없다. 호장님께 아뢰어 대장간으로 보내주마.
다루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전에 부탁이 있습니다. 제 아우를 함께 데려가도록 해주십시오.
다루는 덕이를 가리켰다. 상호가 덕이를 아래 위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너두 유족 사람이냐?
덕이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아니오, 나는 청구족 사람이오. 나는 당신들 종이 아닙니다. 다만 동호의 무리에 포로가 되었을 뿐입니다.
상호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아, 그건 알아. 하지만 너는 많은 곡식과 바꾸어 왔어.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다. 종이 되기 싫다면 부지런히 일하여 네 몸값을 갚아라. 너는 저 유족 사람을 따라 대장간으로 갈테냐?
싫습니다. 전사가 되겠어요.
응, 그렇다면 농사 일을 해야겠지. 농사 일꾼은 싸움이 벌어지면 누구나 전사가 된다. 십장이나 백장이나 급이 오르려면 싸옴에 나가 공을 세우면 되는거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농사 일로 뼈가 굵어져야겠다.
다루와 덕이는 거기서 헤어져야만 하였다. 덕이가 말했다.
저를 도와 주시려면 마음은 잘 알아요. 그렇지만 저는 어서 전사가 되어서 가족들을 되찾아야해요.
다루는 혀를 찼다.
네 평생에 안해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절대로 믿지마라. 한번 흐른 강물은 되돌아 오지않는다.
저는 여기서 시작하여 내 부족을 다시 일으키겠어요.
자주 만나게 될게다.
덕이는 비슷한 움집들이 줄지어 선 마을로 들어갔다. 상호가 백장을 불러 일렀다.
이 아이를 적당한 집에 붙여주어라. 특히 전사가 되겠다고 하니 창수를 시켜보아라. 백장은 덕이를 수많은 호가들 중에서 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모두가 종이었다.
지난번에 자네 아들이 사냥에 나가서 죽었지. 새로 온 사람이니 한 가족이 되어 잘지내게.
백장은 주인에게 이르고 돌아갔다. 주인은 마흔살쯤 먹어 보였는데 딸 셋과 아들 둘 그리고 안해 합하여 모두 일곱 식구였다. 덕이는 백장에게서 받은 소지품을 옆구리에 끼고 출입구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주인이 덕이의 두손을 잡고 기뻐했다.
반갑다. 꼭 그 녀석이 살아 돌아온것 같군. 어서 들어오너라.
덕이는 주인을 따라서 어두컴컴한 움집으로 들어갔다. 출임구 아래로 사다리처럼 생긴 층계가 있었다. 집의 절반이 땅 속에 묻혀 있어서 바닥이 깊숙했다. 그런 집은 갈래나 말모루와 똑같은 식이었다. 입구의 왼쪽에 부엌 칸이 있었는데 흙과 돌로 쌓은 부뚜막 위에 시루와 항아리가 얹혀 있었고 선반이 걸려 있었다.
물독과 곡물 단지와 작은 토기들이 보였다. 집안은 다시 세 칸으로 나뉘어 벽마다 왕골로 칸을 막았다. 부부와 어린아이, 딸 둘, 그리고 덕이보다 좀 어려 보이는 아이가 죽은 제 형과 잤던 모양이었다. 집의 가운데는 부엌과 연결된 빈 공간이었다.
진흙을 다지고 그 위에 솔잎이나 잣나무 잎을 두텁게 깔고 다시 마른 거적을 깔아두었다.
그들은 모두 도토리에 우려낸 베옷을 입고 있었는데 튼튼하고 활동적인듯이 보였다. 주인은 돼지가죽 등거리를 위에 걸치고 있었다.
그래, 어디보자. 네 얘기를 좀 해다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