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조 경영참여가 改革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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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통령이 상식에 어긋나는 언행을 한다거나 이 정부의 정책들이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느낌을 가진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대통령은 최근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이제는 그 보좌관들이 한술 더 뜨는 것 같아 걱정된다.

단적인 예가 경제학자 출신이라는 청와대 정책실장의 노조 경영 참여에 관한 발언이다.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가로 노조의 경영 참여를 인정해야 한다더니, 이제는 아예 개별 기업의 노사협의회를 실질적 의사결정기구로 격상시키겠다고 한다. 이른바 노조의 경영 참여 허용이다.

나라의 명운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문제를 이렇게 간단하게 노조와의 협상 대가 정도로 치부하는 가벼움에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어디서 무슨 경제학을 했기에 내외국 기업인을 모두 바보로 취급하는 것인지, 과연 그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시장경제.민주주의는 무엇인지, 언제부터 회사 경영을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하게 됐는지…. 노조의 경영 참여는 일부 노동귀족에게는 저절로 굴러들어온 떡이겠지만 우리 국민 모두에게는 미증유의 재앙이 될 것이다.

그들은 경제성장을 위해선 수출 증대와 외자 유치가 필요하므로 반드시 노사 갈등구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점잖게 말해 노사 갈등구조지, 이른바 '떼 법'에 호소하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밋빛 좌파 이데올로기나 집단 이기주의가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이 돼서도 안 되고, 또 힘없는 국민이 어설픈 이론가들의 실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이것 저것 외국 모형을 들먹이다 이제는 진정으로 노사 양측이 승복하고 상생할 수 있는 한국식 모델을 개발한다지만, 애꿎은 공무원과 허수아비 관변 학자들만 헛고생시킬 뿐 이미 답은 나와 있다. 그런 것 없다.

우선 '상생할 수 있는'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된다. 경영권이 사측에 있으면 노는 다 죽는다는 말인가?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만 잘 살았고 노는 다 굶어 죽었나? 또 무슨 묘수로 양측이 승복하게 만든다는 말인가. 서푼짜리 애국심에 대한 호소는 당초 무리다. 처음부터 애국심이 있었다면 이 시점에서 이런 이슈로 온 나라가 날샐 일은 없었을 테니까.

우선, 어떤 형태로든 경영권 참여가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는 해법은 노가 받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경영 참여는 노측으로선 어디까지나 덤에 불과했던 것을 이 정부의 좌파적 개혁론자들이 마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부추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떼 법'이 통용되는 한 노측의 비용은 전무하다.

결국 사가 경영권을 양보할 수밖에 없는데, 사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발적으로 그렇게 할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 이유는 법으로 정해진 회사라는 조직 형태의 계약구조에 있다. 사는 자본을 제공하는 대가로 노는 물론 원부자재 공급업체.채권자, 심지어 국세청까지 순서대로 제 몫을 챙긴 후 나머지를 받기로 계약했다.

따라서 투자자본에 대한 수익은 물론 원본까지 손해볼 수도 있으니까 결국 사만 엄청난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사가 경영권을 갖는 것이 상식에 맞으며, 또 그렇게 역사적으로 이들 이해관계자 간에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 예컨대 채권자든 노든 계약에 의해 확정된 보수를 받는 측에서 경영권을 갖는다면 어차피 그들의 몫은 한정된 이상 그들이 나머지를 차지하는 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므로 경영권이 사측에 있을 때만 주주는 투자하려 할 것이며, 이 경우에만 모든 사람의 계약이 완전하게 이행돼 모두가 만족하게 될 것이다. 만약 노가 경영에 참여하길 원한다면 당연히 노도 확정된 급여를 받아서는 안 되고 사와 같이 자본 투자는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익과 손실은 공유해야 할 것이다.

영.미식 노사 모델이 효율성이 높으나 경제성장을 위해선 노조가 당분간 참아야 한다든가, 또는 화합을 위한 약간의 효율성 희생이 무슨 대수냐고 말하는 것은 마치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상식 이하의 논리가 옳다는 말과 같다.

문제의 본질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상식 차원의 얘기다. 효율성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네덜란드식.한국식 운운하면서 외자는 영.미 쪽에서 받는다? 소가 웃을 일이다. 떠나는 기업들은 붉은 띠도 안 두르고 큰소리도 안 지른다. 제발 자중하기 바란다.

李載善 홍익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