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기다리던 양복 남성 4명과 16분 만에 공항 벗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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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포츠재단 정동춘 전 이사장(왼쪽)과 정현식 전 사무총장이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각각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60)씨가 독일로 떠난 지 57일 만인 30일 자진 귀국했다. 딸 정유라씨는 오지 않았다. 최씨의 측근 고영태(40·더블루K 이사)씨는 사흘 전 국내로 돌아왔으며, 최씨가 운영한 비선모임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차은택(47) CF 감독도 이번 주 중 귀국하기로 했다. 지난 27일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의혹의 몸통들이 속속 들어왔거나 그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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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귀국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26일께 독일에서 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당분간 귀국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연설문 유출 의혹으로 사과문을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하지만 최씨가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브리티시에어웨이에 탑승한 시간은 29일 오후 9시45분(한국시간)이다.

짐 안 가져와 수하물 찾는 시간 절약
선글라스 끼고 목도리로 얼굴 가려
평소 타던 국적기 대신 외국기 이용
수사관 동행 의혹…검찰은 부인
고영태 이어 차은택도 이번주 귀국
야당 “국가기관 개입한 것 아니냐”

최씨의 변호인 이경재(67) 변호사는 “런던에서 도피하다 입국한 게 아니라 독일에서 런던으로 갔다가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로 볼 때 최씨가 어떤 이유든 한국행을 결심하고 독일에서 이동한 시점은 28일(한국시간)로 추정된다. 28일엔 조인근(현 한국증권금융 상근 감사위원)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최순실도, 연설문 수정도 모르는 일”이라고 최씨 관련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또 고영태씨와 최씨 의혹을 폭로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검찰 수사를 받은 날도 28일이다.

이와 관련해 야당은 기획입국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최근 2~3일의 흐름을 보면 진상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최씨 측근인 고영태씨, 중국에 있던 차은택 감독, 독일에 있던 최씨의 귀국 시점과 일정이 너무 딱 떨어지고 있다”며 “대체 누가 관련된 증인들의 귀국 및 출석을 조율하고 있는가, 이것은 국가기관이 일부 관여한 게 아니냐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입국 당시 공항에서 아무런 제지를 당하지 않고 모처로 곧바로 이동한 것도 논란을 일으켰다. 30일 오전 7시37분 인천공항에 입국한 최씨는 비행기에서 내린 지 16분 만에 공항을 빠져나갔다. 공항 폐쇄회로TV(CCTV)에 나타난 최씨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목도리로 입과 코를 가린 채 검정 손가방과 검정 기내용 짐가방을 끌었다. 법무부 자동출입국심사대를 거쳐 세관 수하물 수취대 지역을 그대로 통과했다. 부친 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씨를 기다리던 양복 입은 남성 4명과 만났으며 이 중 한 명은 최씨를 만나자 최씨 가방을 들었고, 최씨와 일행은 대기하고 있던 회색 K5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떠났다.

인천공항경찰대 관계자는 “법무부 사람들이 공항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최순실이 입국한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관 동행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검찰 수사관이 최씨와 동행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최씨가 영국에서 출발해 한국으로 오는 사이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공항에서 검찰로 연행하는 게 순서인데 검찰은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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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입국을 지켜본 한 항공 전문가는 “최씨가 언론 등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입국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대한항공 비행기를 주로 이용하던 최씨가 외국 국적사의 비행기를 타 한국인 탑승객이나 승무원의 눈을 피했으며, 장기간 체류하다 귀국하는데도 짐을 부치지 않은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 짐을 찾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함종선·위문희 기자, 인천=최모란 기자 jsham@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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